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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발트, 일곱 번째 이야기

바르샤바를 떠나며 폴란드 역사를 짚어보다

오준엽 기자입력 : 2019.10.09 18:00:00 | 수정 : 2019.10.09 17:58:27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 광장의 북쪽 끝에 성모자 석상이 서있다. ‘파사우(Passau)의 마돈나’라고 부르는 이 석상은 왕실조각가 유제프 벨로티(Jozef Belotti)가 제작해 1683년에 이 자리에 뒀다. 

벨로티가 1677~1679년 바르샤바를 휩쓴 전염병에서 가족들이 살아남게 된 것에 감사드리기 위해서 시작했던 성모자상의 조각을 1683년에 마무리하게 됐던 것이다. 때마침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가 비엔나 전투에서 오스만투르크 군을 격파하고 귀국하게 됨에 따라 이를 기념하고자 완성된 성모자상을 양보해 봉헌됐다. 바르샤바에서는 지그문트 기둥 다음으로 오래됐다. 

폴란드 역시 여타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17세기 흑사병의 유행이 이어졌다. 특히 1652년부터 1663년 사이 걸쳐 러시아와 스웨덴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흑사병, 장티푸스, 천연두 등이 유행했다. 1677년부터 1680년 사이에는 흑사병이 짧게 유행한 것 이외에는 대형 전염병의 유행은 없었다. 

아담 미츠키에비치 광장에 서 있는 성모자상(좌). 성 안나교회 앞 광장에는 다양한 버스킹이 진행되고 있었다. 가장 인기를 끈 공연은 비보잉이었다(우).

성모자상을 지나 성 안나 교회 옆에 있는 마조비에츠키(Mazowiecki) 미니어처 공원은 넉넉하지 못한 자유 시간 때문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곳에는 전쟁 전에 바르샤바에 있었지만, 아직 복원되지 않은 작센왕궁과 같은 역사적 건축물 등을 1대 25로 축소한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약속한 시간에 성 안나 교회 앞에 도착했는데, 교회 앞 광장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았더니 비보잉을 하는 버스킹이었다. 현란한 동작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나보다. 그러고 보니 광장 곳곳에서 연주를 하거나 묘기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6시에 구시가를 떠났다. 성 안나 교회에서 지난 회에서 소개한 관공서건물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주차장이 널찍한 건물이 나온다. 바르샤바 대극장(Teatr Wielki w Warszawie)이다. 2000석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바르샤바 대극장은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극장으로 꼽힌다. 국립극단, 국립 발레단과 오페라단의 본거지다. 1825~1833년 사이에 이탈리아 리보르노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오 코라찌(Antonio Corazzi)의 설계로 지어 로시니(Rosini)의 가극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를 개관작으로 무대에 올렸다. 

사나토르스카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바르샤바 대극장이 들어선 극장광장이다(좌). 정면 입구 위 테라스에는 아폴론이 모는 사두마차가 올려져있다(우).

대극장을 세운 장소는 폴란드 왕비 마리아 카지미에라(Maria Kazimiera)가 비엔나전투에서 오스만투르크 군을 격파한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왕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692~1697년 사이에 지은 마리빌(Marywil)이 있던 장소다. 틸만 가메르스키(Tylman Gamerski)가 바로크양식의 커다란 오각형으로 설계한 건물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보주궁전(Place des Vosges)을 참고한 것이다. 

완공 후에는 왕실아파트, 승리의 성모예배당으로 사용되었고, 외국의 상인들이 가게, 창고 혹은 아파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임대됐다. 1738년 민간에 불하됐지만, 1939년의 바르샤바 전투에서 독일군의 폭격으로 거의 완전히 파괴됐고, 고전적인 외관만 살아남았다가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 폐허가 되고 말았다. 이후 바르샤바 대극장 건설을 위해 철거됐다. 

국립대극장 파노라마 사진 [사진=Wikipedia]

바르샤바 대극장은 1945~1965년 사이 보흐단 프니에프스키(Bohdan Pniewski)의 설계에 따라 복원됐다. 복원된 대극장의 전면에 올려진 사두마차는 코라찌의 설계에 포함됐었지만 폴란드-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제작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두마차를 모는 아폴론은 예술을 후원하는 신이기도 하다.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아폴론의 사두마차는 바르샤바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 아담 미작(Adam Myjak)과 조각학과장 안토니 야누스 파스와(Antoni Janusz Pastwa)가 설계했다. 대극장의 왼쪽 날개 앞에는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스코(Stanisław Moniuszko)의 동상이 오른쪽 날개 앞에는 보이치에크 보구스와프스키(Wojciech Bogusławski)의 동상이 건립됐다. 

지금은 벨로루시에 속하는 우비엘(Ubiel)에서 태어난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스코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에 교사, 지휘자,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의 음악에는 지금은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등으로 나뉘었지만,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속하는 사람들의 민속적이며, 애국적인 테마로 가득 차있다. 19세기 중반 빌뉴스에서 음악활동을 하다가 1858년에는 바르샤바의 대극장의 폴란드 오페라단 수석 지휘자로 임명됐다. 폴란드 사람들은 그를 ‘폴란드 국립오페라의 아버지’라 부른다.

보이치에크 보구스와프스키는 배우, 연극 감독이자 폴란드 계몽주의 극작가였다. 그는 세 번에 걸쳐 바르샤바 국립극장의 감독으로 활동했는데, 이런 그를 폴란드 사람들은 ‘폴란드 극장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1811년 그는 폴란드 최초로 연극학교를 세웠고, ‘극작술(Dramaturgia)’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대극장 왼쪽 날개 앞에는 ‘폴란드 국립오페라의 아버지’라는 스타니스와프 모니우스코의 동상이 세워져있다(좌). 정면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도로변에는 바르샤바 자오선을 표시하는 기둥이 있다(중). 대극장의 오른쪽 날개 앞에는 ‘폴란드 극장의 아버지’라는 보이치에크 보구스와프스키의 동상이 서있다(우). [중 사진=Wikipedia]

바로 앞을 지나면서도 놓쳤지만, 바르샤바 극장광장 주차장에는 바르샤바의 평균시간을 나타내는 바르샤바 자오선(południk warszawski)을 표시하는 작은 기둥이 있다. 극장광장 앞을 지나는 도로 가까이다. 이 기둥은 1880년에 세워진 것으로 그 당시에 사용 된 좌표계 에 따라 <52°14'40”N, 21°00'42” E>라고 표시돼있다. 바르샤바 자오선 표지가 세워진 4년 뒤에 그리니치 평균시(Grandwich Mean Time)는 런던 그리니치 (Greenwich)의 주요 자오선을 기준으로 세계시간 계산의 국제표준이 됐다.

극장광장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이날 저녁 식단은 닭스프에 이어 돼지고기볶음이 나왔다. 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았다. 식전에 나온 약간 단맛이 나는 빨간색 음료는 콤포트(Kompot)라는 전통음료라고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칸 등 동유럽, 발트 연안의 북유럽 국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인기 있는 무알콜 음료다. 지역별 전통과 계절에 따라 딸기, 살구, 복숭아, 사과, 대황, 구즈 베리 또는 체리와 같은 과일을 많은 양의 물에 담고 설탕이나 감미료를 더해서 만든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한 것은 7시20분이다. 숙소에는 일찍 들어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층이 공사 중이라서 투숙확인을 지하 1층에서 하고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승강기가 있었지만 안내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식당 옆으로 경사로가 있었는데도 사용할 수 없다고 딱 잡아뗐다. 정가람 인솔자와 김영만 가이드가 일행들의 가방을 들어 내리느라 고생했다. 숙소에 일찍 들면 아무래도 일찍 잠들기 마련이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즉 시차 적응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이 딱 그랬다.

바르샤바 프레드릭 쇼팽 공항 가까이 있는 로드호텔에서 묵었다(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층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프런트가 지하로 내려가 있었다(우).

2회 차에서 이야기한 9세기까지의 폴란드 역사를 조금 더 정리해보자. 9세기 이후의 폴란드 역사는 폴란드 왕국의 피아스트(Piast) 왕조와 폴란드왕국-리투아니아 공국 시절의 야기에우워(Jagiełło) 왕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두 왕조 이외의 왕국들은 대체로 외세의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편 독립국가로서의 폴란드의 역사는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멸망하면서 끝났고,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 폴란드 공화국이 세워지면서 독립을 되찾았다.

9세기경 시에모비트(Siemowit)가 피아스트 왕조를 열었다고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가톨릭을 받아들이면서 966년에 폴란드라는 나라를 세운 미에슈코 1세를 첫 번째 왕이라고 한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선대 조상을 왕으로 모신 예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미에슈코 1세는 국가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으며, 뒤를 이은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Bolesław I, Chroby, 용감공)는 비에프시(Wieprz)강 상류와 부크(Bug)강 유역과 산(San) 강 상류의 프셰미실(Przemysl)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11세기 들어서 독일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결국은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의 아들 대에 들어 국력이 쇠약해지면서 베스프림(Bezprym)이 왕권을 포기하고 독일에 조공을 바치는 공국으로 전락했다. 이어 모라비아 지방은 체코에, 슬로바키아 지방은 헝가리에 병합됐다. 11세기 중반 볼레스와프 1세의 손자 ‘카지미에시 1세 오드노비치엘(Kazimierz I Odnowiciel, 부흥공)’이 독일의 도움으로 남부의 소폴란드와 중서부의 대폴란드 지역을 되찾았다. 

그 무렵 폴란드는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했고, 11세기 후반 카지미에서 1세의 뒤를 이은 아들 볼레스와프 2세는 폴란드를 공국에서 왕국으로 다시 격상시켰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다시 공국으로 내려앉았고, 형제간의 권력싸움이 이어지면서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볼레스와프 3세가 죽은 1138년부터 200년 가까운 세월동안 폴란드는 분할공국체계가 유지됐다. 13세기 말에 프르셰미슬 왕조의 하폴란드 공작 ‘바츠와프 2세’와 그의 아들 ‘바츠와프 3세’가 폴란드 왕위를 차지한 적도 있으나, 14세기 들어 피아스트 왕조의 브와디스와프 1세 워키에테크(Władysław I Łokietek, 단신공)가 다시 왕위에 올랐다. 

피아스트 왕조는 카지미에시 3세가 후사 없이 죽음으로써 막을 내리고, 앙주왕조의 헝가리왕 루드비크에게 넘어갔다가 그 역시 아들이 없어 딸 야드비가에게 폴란드 왕위가 넘겨졌다. 1384년 폴란드의 귀족들은 로마교황청의 갖은 획책에도 불구하고 비기독교 국가로 남아있던 리투아니아의 대공 요가일라(리투아니아어, Jogaila)와 협상을 통해 요가일라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폴란드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을 하며 폴란드 왕에 오르게 된 것이다.

리투아니아 대공 요가일라는 1386년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공국을 통치하는 ‘브와디스와프 2세 야기에우워(폴란드어: Władysław II Jagiełło)’라고 개창하며 야기에우어 왕조를 열었다. 당시 야기에우워 왕조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체코, 헝가리 등 4개국을 지배하며 유럽 왕조 가운데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국정은 독립적으로 운영됐으며, 외교관계 역시 각국의 사정에 따라 입장을 정했다. 예를 들면, 오스만투르크가 헝가리를 공격할 때 폴란드는 물론 리투아니아에서는 군사적으로 헝가리를 지원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한편 야기에우어 왕조에 의한 폴란드왕국의 지배는 1572년 마지막 폴란드 왕이자 리투아니아대공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가 죽으면서 막을 내린다. 1569년 출범한 루블린 연합에서 싹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성립한 것이다. 이 정치체계의 특징은 왕권이 법과 귀족계급(슐라흐타;szlachta)이 지배하는 의회(세임;Sejm)에 의해 철저하게 제한됐다는 점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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