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백지영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아요”

백지영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아요”

기사승인 2019-10-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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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백지영의 새 음반 표지 사진을 찍는 날. 백지영은 자신의 매니저 최동열 대표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촬영을 어색해하는 최 대표의 어깨에 손을 두른 채 백지영은 밝게 웃었다. 사진작가에겐 ‘우리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최 대표가 새로 만든 기획사 ‘트라이어스’에 자신이 1호 연예인으로 영입된 것을 기념한 사진이었다. 백지영은 훗날 트라이어스의 사무실이 갖춰지면, 이 사진을 최 대표의 방에 걸어둘 계획이라고 했다. 백지영과 최 대표는 벌써 14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호칭이 ‘동열아~’에서 ‘대표님~’이 된 게 제일 큰 변화에요.” 최근 서울 강남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백지영은 웃으며 말했다. 그는 “동열이는 또 다른 가족”이라고 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속내를 나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덮어놓고 내편이 돼주는 가족과 달리, 동열이는 합리적·이성적으로 나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백지영과 최 대표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회사’를 만들자며 뜻을 모았다. 사명 ‘트라이어스’엔 ‘아티스트, 팬, 회사가 하나로 어우러져 우리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최 대표가 백지영의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한 건, ‘사랑 안 해’가 발표된 2006년부터다. 이 곡을 내기 전 백지영은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2000년 ‘그 사건’ 때문이다. 피해자였던 백지영은 하지만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과해야 했다. 백지영은 이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족, 신앙, 그리고 음악이 자신을 살게 해줬다고 말했다. ‘사랑 안 해’로 재기에 성공한 백지영은 기세를 몰아 ‘사랑 하나면 돼’, ‘총 맞은 것처럼’, ‘잊지 말아요’, ‘그 남자’ 등 발라드곡을 성공시켰다. ‘댄스 퀸’ 백지영은 그렇게 ‘발라드 퀸’ ‘OST 여왕’이 됐다.

“‘제가 이런 시련을 통해 이렇게 성장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기엔, 너무 추상적이고 저만 아는 느낌이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다만… 예전에는 고난을 견디는 시간 안에 또 다른 고난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시간 위에 잠깐 앉아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흘러가는 걸 거스르지 않으면서, 좀 더 중요한 것들을 넓게 보고 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거죠. 시간의 무게는 비슷한데, 저한테 주는 데미지는 굉장히 달라졌어요. 예전엔 비수 같이 꽂혔지만, 이젠 (상처가) 저한테 조금 스며들어도 그걸 빨리 증발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됐어요.” 

[쿠키인터뷰] 백지영 “절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아요”지난 4일 발표한 새 미니음반 ‘레미니센스’(Reminiscence)의 타이틀곡 ‘우리가’는 ‘백지영 발라드 2.0’이다. ‘총 맞은 것처럼’에서 들려준 애절한 신파 대신 따뜻한 느낌을 강조해서다. 백지영은 “너무 슬프고 절절한 것보단 따뜻한 느낌이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음반 제목을 ‘추억’(Reminiscence)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백지영은 이 음반을 통해 그리운 날을 떠올릴 수 있는 향기, 공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곡가 지고릴라,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 등이 이 음반 제작에 힘을 보탰다.

노래에선 여전히 이별을 얘기하지만 백지영은 요즘 더없이 행복하다. 2017년 품에 안은 딸 정하임 양 덕분이다. 그는 “앞서 두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하임이는 굉장히 큰 선물”이라고 털어놨다. 엄마를 닮았는지 하임 양은 목청도 남다른데다 음역대도 높다고 한다. 백지영은 “한 번은 일을 마치고 집에 갔더니 마침 TV에 내가 나오고 있었다”며 “하임이가 혼란스러워하진 않고, ‘엄마가 집에 없을 땐 TV에도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1999년 데뷔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그는 “나를 태우고 와준 시간에 고맙다”고 말했다. 체력을 잘 관리해 최대한 많은 공연에 서는 것이 그의 목표다. 다음달부턴 전국을 돌며 단독 콘서트를 연다. 백지영은 “‘데뷔 40주년을 맞게 되면 음반의 모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해볼까’라는 생각이 언뜻 들 정도로 감사하다”며 “생각‘만’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지영 특유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인터뷰 현장을 기분좋게 채웠다.

“데뷔 초의 백지영은 아무것도 모른채 노래하고 춤추는…솔직히 말하자면 기계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때 매니저 오빠의 다이어리를 보면 하루에 일정을 13개까지 소화했대요. 그후 10년간은 여러 일이 있었기 때문에 성숙하는 단계였던 것 같고요. 이제는 정말 (듣는 이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됐어요. 욕심과 조급함이 없어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내가 원하는 뭔가를 고집하기보단,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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