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신의 선물

신의 선물

기사승인 2019-10-23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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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신의 선물흔히 망각을 ‘신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끔찍하고 괴로운 일을 잊지 못하고 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겠죠. 그렇다면 반대로 잊는다는 것은 얼마나 간편한 일일까요.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은 선택적으로 지우고 살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 한 광고에 들어간 문구가 논란입니다. 문제의 기업은 유니클로. 유니클로의 광고 영상 속에는 10대 패션 디자이너와 98세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디자이너는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었나요.” 그러자 할머니는 답하죠.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이 광고가 문제 된 이유는 위안부 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80년’ 같은 의역 문구가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고, 아울러 이러한 것들이 우리나라의 위안부 문제 제기를 조롱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유니클로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변명을 믿어줄 한국인은 없어 보입니다.

시계를 80여 년 전으로 돌려볼까요. 일본은 우리나라 청년은 강제로 동원해 전쟁터, 군수공장 등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어린 소녀들은 위안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잔혹함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몇 해 전 쿡기자가 만났던 한 강제동원 피해자는 열일곱의 나이에 광산으로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일해야 했습니다. 열세 살의 나이에 근로정신대가 됐었던 여성 피해자는 화장실 따라온 일본군에게 매질을 당해야 했고요. 피해자들은 공통으로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피해자는 생전 아흔넷의 나이에 일본에 당한 일들을 털어놓으며 어린아이처럼 울었습니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지금도 위안부 동원 당시 자행됐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강제동원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일본에 없습니다. 잊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도 한 적이 없죠. 의혹을 ‘루머’라고 치부했던 유니클로는 결국 광고 송출을 중단했습니다. 백번 양보해 유니클로가 해명 그대로 특정 목적이 없었고 괜한 오해를 산 거라 해도 억울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멋대로 잘못을 잊은 일본, 피해자들 앞에서 역사적 의도성 짙은 광고를 만든 일본 기업 모두 이번에도 신의 선물을 사용하면 될 테니까요.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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