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무소의 뿔처럼”…‘꽃파당’ 장내관役 하회정의 길

“무소의 뿔처럼”…‘꽃파당’ 장내관役 하회정의 길

기사승인 2019-10-25 07:00:00
- + 인쇄

그는 ‘왕의 남자’였다. 아버지의 약값을 벌기 위해 사내이길 포기하고 궐에 들어가 내관이 됐다. 명령에 따라 임금의 수족이 됐지만, 그뿐. 충성심이나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높으신 양반의 명으로 임금을 감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임금의 모습에 내관의 마음도 흔들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나중엔 번뇌와 갈등까지 겪었다. 내달 종영하는 JTBC 월화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 꽃파당’ 속 장내관(하회정)의 이야기다.

여느 판타지 사극 속 내관이 처음부터 왕의 조력자를 자청했던 것과 달리, 장내관은 숱한 고민 끝에야 임금을 자신의 왕으로 받아들인다. “장내관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았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이 흔들릴 수 있고, 나쁜 길로 빠졌다가 반성하며 돌아오기도 하잖아요. 장내관도 마찬가지였죠.” 장내관을 연기한 배우 하회정은 최근 서울 홍대 인근 카페에서 쿠키뉴스와 만나 “장내관은 내게 과분하고 감사한 배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서지훈, 김민재, 공승연, 박지훈 등 함께 호흡한 배우들과도 나이대가 비슷해 촬영장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쫑파티’ 때도 먼저 가는 사람 없이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하회정은 임금 이수 역을 맡은 서지훈과 주로 붙어 다녔다고 한다. 그는 “지훈이가 한 여인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을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눈빛이 우수에 차 있었다”며 웃었다. 고영수 역의 배우 박지훈에 대해선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연기할 땐 정말 프로답다”면서 “한 번은 무릎을 꿇는 장면이 찍는데, 감정을 이어가겠다면서 쉬는 시간에도 계속 꿇어앉아 있었다”고 칭찬했다.

[쿠키인터뷰] “무소의 뿔처럼”…‘꽃파당’ 장내관役 하회정의 길1989년생인 하회정은 만30세였던 2017년 OCN 드라마 ‘구해줘’로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그가 연기에 발을 들인 건 19세 때. 연극영화과 지망생이던 첫사랑 때문이었다. 연기학원 첫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청 떨렸어요. 엄청 부끄러웠고요. 그날 어떤 여학생과 악수를 했는데, 유치원 때 이후로 여자 손을 처음 잡아본 거였어요.(웃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긴장감을 동반하는 일이었지만 하회정은 그 긴장 안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달라진 건 또 있었다. “슬픈 얘긴데, 괜찮으시겠어요?” 하회정은 이렇게 묻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학창 시절 그는 학급에서 따돌림당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연기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생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두려웠단다. 그래서 그는 선생님에게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소문이 새어나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학생들이 그에게 찾아와 응원과 격려를 해줬다. ‘넌 할 수 있을 거야’ ‘멋지다’ ‘열심히 노력해봐라’…. 연기가 하회정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하지만 ‘전업 연기자’가 되는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했지만 긴 시간을 무명으로 보냈다.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하회정은 ‘연기자로서 내 상품 가치가 부족하구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연예인 매니저 등 여러 일을 하던 그는 마침내 한양대학원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배우가 못 돼도 나는 이 근처 어딘가에서 계속 비비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한 번은 울면서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은 적도 있었죠. 그때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그래도 회정이는 우직해서 좋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네가 봄이나 여름에 피는 꽃은 아닐지언정, 겨울에는 필 수 있지 않겠니?’라고. 그 말이 무척 힘이 됐어요. 그리고 다짐했죠. 남들보다 먼저 그만두지 말자고, 무소의 뿔처럼 가자고.”

연기학원에서 연기자 지망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하회정은 학생들에게 ‘너희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것은 하회정이 자기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그는 “스타가 되는 건 극소수고, 대부분은 돈도 엄청나게 받지도,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도 못한다. 결국 자신이 즐겁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연기하면서 즐거워하는 기운을,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