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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1년…새별오름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열다섯 번째

기자입력 : 2019.10.26 00:00:00 | 수정 : 2019.10.26 08:09:18

새별오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59-8)은 해발 519 미터이나 실제 높이는 119 미터이다. 정상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길이 험하지는 않아서 신발이나 옷차림이 오르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 준비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제주도 1년 살기’를 칠월 초에 덜컥 시작한지 석 달째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아내와 말 그대로 24시간 곁에 붙어 지냈다. 집에 있던 밖에 나가든 늘 둘이 함께 나간다. 어디를 가든 걸어가기는 멀고 버스를 타기는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주들불축제유래비는 한글, 영어, 중국어와 일본어로 들불축제에 관해 안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24시간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면 사소한 일에 관해서라도 의견충돌이 잦아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밖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오기 전 내심으로는 꽤 걱정을 했었다. 더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마도 직장 생활을 할 때조차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고 집에는 대략 언제쯤 가게 될지 늘 사전에 알려주고 혹시라도 일정에 변화가 있으면 그 역시 중간 중간 알려주는 일상이 버릇처럼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을 한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그렇게 했으니 참으로 오래된 습관이다.

새별오름 정상 능선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드넓은 벌판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이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몽골의 잔존세력과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곳이다.


인제대학교서울백병원에서 간이식에 성공했던 1992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선거에 쏠려 있었기 때문에 ‘뇌사자의 간을 말기 간암환자에게 이식했다’는 뉴스는 곧 묻혔다.

당시 간이식팀을 주도했던 이혁상 교수는 수년 동안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며 간이식을 준비해왔다. 비록 동물실험이지만 원내의 거의 모든 진료과 전문의는 물론 전문 간호사까지 참여하는 대규모 실험이 수십 번에 걸쳐 반복되었다. 동시에 해외의 정보를 지속적으로 찾아서 공유하기 위해 강도 높은 원내 학술 연구모임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0월 중순이면 새별오름의 억새꽃이 절정에 이르면서 방문객이 급증하고 무질서한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러나 간이식 뉴스가 잦아들면서 뇌사에 관한 뉴스가 고개를 들었다. 당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거의 없었던 ‘뇌사’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뇌사자의 간을 기증받아 이식에 성공했다는 보도자료를 서울백병원에서만 8번을 더 내보냈고 서울시내의 다른 대학병원들 역시 여기에 합류하고 있던 상황에서 뇌사는 피할 수 없는 주제였다.

새별오름의 남서쪽에서 올라 북서쪽의 능선 끝에서 바라본 벌판 역시 끝없이 넓기만 하다.


그동안은 심장이 멎고 다시 뛰지 않는 상태만을 죽음으로 보아왔다. 그런데 비록 보조기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피가 돌고 몸도 아직은 따뜻한데도 사망’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혼수상태와 뇌사가 어떻게 다른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뇌사를 판정하는 지에 관한 기사가 이어졌다.

새별오름에는 어느 오름보다 많은 종류의 꽃들이 터를 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꽃이 당잔대꽃이다. 꽃이 크고 보라색이 짙은 당잔대꽃은 꽃 모양마저 다양해 관상용으로 재배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혁상 교수팀의 간이식 후에도 뇌사에 관한 논쟁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1999년에야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고 1년 후에 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이혁상 교수는 ‘뇌사자의 간을 말기의 성인 간암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하면서 우리나라에 뇌사를 알리고 종국에는 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도록 방아쇠를 당겼다.

꽃이 크고 색도 진해 마치 도라지꽃처럼 보이지만 당잔대꽃이다.


새별오름
제주도의 오름 중 관광객들이 꾸준히 많이 찾는 오름은 대부분 한라산 동쪽 능선에 분포하고 있다. 산굼부리는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예약제로 탐방이 이루어지는 거문오름은 여유 있게 날을 잡고 예약을 해야 탐방이 가능하다. 최근엔 용눈이오름이나 백약이오름에 젊은이들이 보기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찾는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랑쉬오름을 걷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새별오름의 당잔대꽃 중에서도 꽃이 작고 색은 더욱 진해 기억에 남은 꽃이다.


한라산의 서쪽능선에서 외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오름은 해마다 정월보름에 맞추어 억새를 불사르는 들불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 정도다. 오름의 모양이 초저녁에 뜨는 샛별 같다고 해서 새별오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새별오름은 분화구가 복잡한 형태의 오름이어서 정상부에 올라보면 다섯 봉우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별오름의 수 많은 당잔대꽃 중에서 가장 수수하고 꾸밈없는 꽃이다.


새별오름의 높이는 519미터로 알려져 있지만 해발 400미터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실제 올라가는 높이는 119미터다. 그러나 그리 만만하게 보고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름 정상부까지 급한 경사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20분 정도 걸으면 오를 수 있다고들 하지만 찬찬히 꽃과 풀을 살피다 보면 20분으로는 어림없다.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주로 8월에 꽃을 피우는 잔대이지만 많이 늦은 시기에 꽃을 보여주고 있다.


억새와 그 품에 안겨 피어난 잔대, 가시엉겅퀴, 야고, 이질풀, 자주쓴풀의 꽃들과 눈을 맞추다보면 어느새 오름 위에 올라서서 서쪽의 넓은 들이 가슴에 안긴다. 그 너머 바다 위엔 비양도가 떠 있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한라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자주쓴풀은 당잔대 다음으로 새별오름에서 많이 보였던 꽃이다. 일부의 염증 치료와 식욕부진,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관상용으로도 훌륭한 2년생 꽃이다.


새별오름에서 눈에 들어오는 이 벌판에서 650여 년 전인 1370년 (공민왕 19) 목호의 난이 일어나 최영 장군이 이끄는 진압군과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 원나라가 탐라의 삼별초를 진압하고 4년 뒤 1277년 목마장 (牧馬場)을 설치했다. 원은 여기에 목호(牧胡)를 보내 말을 기르게 했다.

야고는 잎이 없이 억새 뿌리에 기생하는 식물이다. 제주도에서는 억새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8월과 9월에 수줍은 꽃을 올리지만 더러는 이렇게 늦은 시기에도 보인다.


그러나 원이 기울고 명이 일어나면서 고려와 명의 국교가 이루어지고 제주의 말을 명으로 보내고자 했다. 그러자 목호들이 ‘원 황제의 말을 명에 보낼 수 없다’며 저항했다. 이 때 고려 진압군의 규모를 보니 전함이 314척에 병사가 2만 56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제주에 남아 있던 몽골인과 원을 따르는 사람들의 세력이 그만큼 강력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흥하고 있던 명이 고려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고 쇠하던 원의 세력이 여기에 대항하며 일어난 비극이 잠든 벌판이다.

가시엉겅퀴는 7월과 8월 제주도 전역에서 흔하게 보이는 꽃이다.


이제 사람들은 새별오름의 억새와 음력 정월대보름 전날인 2월 14일과 15일 사이에 들불을 놓아 이 억새를 태우는 들불축제로 새별오름을 기억한다. 말과 소를 방목해 키우던 옛날, 제주 사람들은 겨울이 지날 때쯤 초지에 불을 놓아 마른풀과 해충을 없애곤 했다. 재는 거름이 되어 풀을 더욱 잘 자라게 했을 것이니, 소와 말 먹이기가 해마다 수월해 졌을 것이다.

산부추는 비늘줄기와 어린순을 나물로 식용하며 8월-11월에 꽃을 피운다.


과거의 이러한 풍습을 담아 이 새별오름 봉우리의 한 경사면에 가득한 억새를 태우는 들불축제를 시작했다. 오름 전체가 타오르는 듯 보이니 다른 지역의 달집태우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마치 ‘새별오름 화산이 폭발하는 듯했다’고 한다. 이 때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딱지꽃은 얼핏 양지꽃과 비슷하게 보이며 6월과 7월에 꽃을 피운다. 딱지꽃 역시 해독효과를 기대하며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억새를 바라보며 새별오름을 오르기 시작하면 시작점에서부터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버려진 쓰레기는 입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부에 올라가도록 끊어지지 않고 눈을 찌른다. 억새는 바람에 일렁이고 사람들은 억새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억새가 꺾인 자리에서 한 발 더 들어가고, 거기서 또 한 발 들어갔다. 그리고 슬그머니 휴지 한 장 버리고, 마시던 음료도 내려놓았다. ‘와서 보고 흔적 남기지 않고 가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던가...

쑥부쟁이꽃은 제철 가을꽃이다. 꽃의 모양만 보아서는 벌개미취, 해국, 구절초, 갯쑥부쟁이 등과 구별이 쉽지 않다.


새별오름은 들불축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름만큼이나 광활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들불축제를 위한 건물이 컨테이너 가건물까지 해서 5동, 그리고 화장실이 한 동 설치되어 있다. 주차장과 건물 모두 들불축제 기간 외에는 쓰이지 않는 건물인 듯하다. 화장실은 있다는 생색만 내고 있는 지, 특히, 여자용 화장실 앞에는 하루 종일 줄이 늘어서 있다.

산국은 바람이 더욱 차게 불어야 꽃봉오리가 벌어질 듯하다.


제주 들불축제 안내문을 읽어보면 한쪽에서는 2000년부터 시작했다고 하고 제주시장 이름의 제주들불축제유래비에서는 1997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 대한 트집이 아니다. 이런 사소함에 대한 소홀함이 제주시에서 가장 지저분한 오름을 만들었다. 이런 사소함에 대한 소홀함이 커져서 오름 오르는 길 가에 서 있어야 할 소화전은 비스듬히 서 있고 소화전함은 아예 뽑혀 누워 있었다.

물론 들불축제 준비 중에 버려진 쓰레기는 깨끗이 청소될 것이고, 화장실은 충분하게 확충될 것이며, 소화전은 바르게 작동되도록 정비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 본 사소함에 대한 소홀함은 걱정으로 남았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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