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저출산’ 대책…대통령 주재 회의는 딱 한 번

185조 예산 투입했지만 작년 합계출산율 0.98명, OECD 국가 중 최저

기사승인 2019-10-28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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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수당, 출산장려지원금 등 지원책 국민 체감 낮아

“돈 없어서 안 낳고, 양성평등적이지 않아서 결혼 안 한다” 많아

“100조 공중분해, 돈 낭비하기”, “생산인구 복지를 잘해줘야지 방향이 잘못됐다”, “낳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저출산 대책에 투입된 예산만 185조원이 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자녀의 수)은 1명도 안 되는 0.98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출생아수가 16만명에 미치지 못해 역대 최소 수준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저출산 문제해결에 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가 단 한 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2월 말 청와대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첫 간담회를 주재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들은 실패했다”면서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도 변화했다. 지난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출산율’을 강조하던 기존의 출산장려지원 정책에서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며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발표했다. 이를 통해 출산‧양육 부담을 줄이고 출생아 수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을 완화하겠다는 것인데, 실질적인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양육비, 높은 집값 등 경제적 부담으로 출산 꺼려…“단기적‧일시적 지원 넘어선 정책 필요”

현재 정부는 출산 후 부모 등이 가질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출산장려금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최대 수백만원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국민 체감도는 매우 낮다.

 

김광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출산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다. 김 의원이 여론조사전문기관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10월 2~3일 양일간 전국 성인 10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4.3%가 ‘경제적 부담’을, 15.5%가 ‘사교육 등 교육문제’를, 13.8%가 ‘출산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 12.8%가 ‘주택 마련 부담’, 11.0%가 ‘청년 취업난에 대한 우려’로 인해 출산을 꺼리고 있다고 답했다.

저출산 극복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출산장려금에 대해서는 54.0%가 ‘저출산 극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7.8%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는 나라를 강조하지만, 아직 국민들 마음속에는 와 닿지 않고 여전히 부담은 부모들의 몫이다”며 “단기적, 일시적 지원을 넘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국내 15∼49세 기혼여성의 자녀 출산실태를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출산 기피의 원인이 ‘경제적 이유’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배우자가 있는 여성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수는 평균 2.16명이지만, 실제 출산한 자녀수는 평균 1.75명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보면, 현재 배우자가 있는 유배우 여성의 대부분은 ‘계획 없음(84.8%)’이라고 답했고, 그 이유로 ‘자녀교육비 부담(16.8%)’, ‘자녀양육비 부담(14.2%)’, ‘소득·고용 불안정(7.9%)’, ‘일·가정 양립 곤란(6.9%)’, ‘자녀 양육을 위한 주택마련 곤란(1.3%)’ 등 경제적 이유로 분류될 수 있는 응답의 비율이 47.1%에 달했다.

저소득층은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정도가 더 크다. 인재근 복지위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동의 성장을 돕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씨앗통장’에 월 1만원도 적립하지 못하는 아동이 2만명 가까이 된다.

이 사업은 아동 또는 보호자 및 후원자가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1:1 매칭지원으로 같은 금액을 적립해주는 사업이다. 이렇게 모인 적립금은 아동이 만 18세 이후 자립할 때 자립지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8만973명이 씨앗통장에 가입한 상태이나, 미저축을 포함해 월 평균 1만원 미만 저축아동은 8월 기준 1만 8284명에 달한다. 전체 가입아동의 22.4%를 차지하는 수치다. 이에 인재근 의원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자립지원금은 실제 금액의 몇 배에 이르는 가치와 힘을 갖는다. 복지부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높은 집값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결혼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 청년 인구가 늘어나고, 이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신용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의원은 지난 8월 바른미래당 원내정책회의에서 “청년이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일자리와 집값 문제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라며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표되던 소득주도 성장은 일자리를 줄이고 소득마저 감소시킨 실패한 정책의 상징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신 의원은 “집값을 잡겠다고 했지만 수도권 집값은 전 정부 보다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신혼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 되어가고 있다”면서 “정부는 효과 없는 저출산 대책에 10년간 100조원을 쓸게 아니라 집값을 잡고, 청년의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데 100조를 써야 나라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길 잃은 ‘저출산’ 대책…대통령 주재 회의는 딱 한 번

양성평등적이지 않은 결혼제도 검토 필요…남성육아휴직 늘려야”

여성에게 육아에 대한 더 많은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는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남성의 육아휴직을 늘리기 위해 저출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산하 공공기관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종필 복지위 의원에 따르면, 복지부의 2014년-2018년 남성육아휴직률은 5.0%에 불과했다. 다른 산하 기관의 경우 ‘보건복지인력개발원’이 18.7%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보건산업진흥원’ 13.3%, ‘사회보장정보원’ 8.9%,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8.1%, ‘건강증진개발원’ 7.0% 순이었다. ‘보육진흥원’, ‘한의약진흥원’ 등은 1%미만이었다.

윤 의원은 “아직도 결혼이나 가족제도에 있어서 여성들이 불리한 측면이 많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늦게 하고, 이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윤 의원이 ‘2018년 저출산분야 FGI 조사결과’를 분석한 결과,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응답한 비율이 19-29세 여성에서 높았고, 이러한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이유로는 ‘결혼문화가 양성평등적이지 않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윤 의원은 “남성과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공동으로 부담할 수 있도록 직장에서 남성육아휴직을 보장해야 한다. 주무부처인 복지부와 산하 공공기관들부터 솔선수범해야 민간기업도 함께 동참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역설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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