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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증권, 시대의 기억을 담다...한국 자본시장 변천사 '증권박물관'

증권, 시대의 기억을 담다...한국 자본시장 변천사 '증권박물관'

지영의 기자입력 : 2019.11.15 06:15:00 | 수정 : 2019.11.14 22:23:28

#자본시장에서 제 역할을 다한 종이증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종이증권은 예탁결제원 산하 증권박물관에 보관됐다. 증권박물관은 최초의 증권부터 마지막 종이증권까지, 한국 자본시장 변천사가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보유한 주식 폭락으로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입어 마음 돌릴 곳이 필요하다면 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증권 400여 년의 역사를 들여다보다 보면 나의 주식이 언제 오를지 내다볼 혜안을 얻게 될지 모른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한 편에 오롯이 서 있는 건물. 한국예탁결제원 일산센터다. 이곳 6층에 있는 증권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증권박물관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관한 곳이다. 지난 2004년 설립됐다. 내달 4일에는 부산에서도 국내 두 번째 증권박물관이 개관한다.

증권박물관에서는 제 소임을 다한 증권들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지난 9월을 마지막으로 자본시장에서 물러난 종이증권도 이곳으로 옮겨져 사료로 전시됐다. 

예탁결제원은 증권박물관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증권 한장 한장이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 설립 목적도 실물 증권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경제적 유물인 증권을 보존하고 역사로 남겨 연구하기 위해서다. 박물관 내에는 6800여 점의 국내외 증권관련 자료가 있다. 박물관을 찾은 이들은 전시된 기록을 통해 증권의 400여 년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증권, 한국 경제의 기억을 담다...아픈 역사부터 눈부신 발전까지 '한국 자본시장 변천사'

증권은 주식이나 채권, 즉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문서를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되는 증권은 조선시대의 토지·노비 매매문서다. 증권박물관에는 지난 1843년(계묘년)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표도 전시돼있다. 한 평민이 185냥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증권을 발행한 셈이다. 갚겠다는 약속 글귀 위에는 신원 보증을 위해 투박한 손도장이 그려졌다.

민족의 아픈 역사인 일제강점기, 일본의 경제수탈과 이에 대한 저항도 증권 위에 아로새겨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증권시장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것도 이 시기다. 수탈을 위한 식민지 경제정책을 통해 일본의 자금이 투입된 주식회사가 세워졌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권시장도 형성됐다. 국내 최초의 증권거래시장은 지난 1920년에 개설된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이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 위한 절절한 노력도 증권으로 남았다. 전시된 독립공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독립공채조례를 제정·공포하면서 중국 상하이·미주 등지에서 발행됐다. 공채 이자는 연 5~6%였다. 대한민국이 오롯이 독립하거든 그 시점에서 5년 뒤부터 원금을 수시로 갚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이 매입에 나섰다. 그러나 상환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는 못했다. 독립공채를 매입하고도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이 일제에 탄로 나지 않기 위해 숨겨야 했기 때문이다. 땅에 매장해두었다가 분실하거나, 혹자는 태우기도 했다.

상환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되기도 했다. 지난 1950년 6월1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서울에 사는 안 모 씨가 독립공채 상환을 요구했으나 정부가 거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지난 1983년 국회가 독립공채 상환조처법을 통과시키면서 상환이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상환 실적은 여전히 미미했다.

사진= 제 1호 국민주인 포항종합제철 주권

일반 대중들이 증권거래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당시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국민 소득이 증가했다. 증권시장에서도 증권 발행량이 큰 폭 증가하며 거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예탁결제원인 '한국증권대체결제주식회사'도 지난 1974년 설립됐다. '여의도 증권가'의 시발점이 된 명동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의 여의도 이전도 지난 1979년에 이뤄졌다.

증권, 문화·역사를 담다...세계사 발전의 기록

세계 각지에서 발행된 증권에는 시기별로 그 당시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담겼다. 증권박물관에는 지난 1928년에 발행된 러시아 공채도 전시돼 있다. 당시 러시아는 황제가 물러나고 수립된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전쟁 지속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 공채에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방패로 아기를 보호하는 그림이 담겨 혼란 속에서 안정을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에도 독립협회에서 세운 독립문이 태극기와 함께 그려져 있다.

또 증권에는 당시의 건축물과 산업발달을 견인한 상징적인 문물들이 담기기도 한다. 지난 1904년에 발행된 브루게 해양건설회사의 주권에는 운하 건설을 상징하는 이미지와 중세 유럽의 상업과 문화중심지였던 브루게 지역의 건축물이 인쇄되어 있다. 브루게 해양건설회사는 1895년에 벨기에의 브루게 지역에 항구와 운하 건설을 위해 설립된 건설회사다. 


이밖에 예탁결제원에 전시된 세계 각국 다양한 회사의 증권에는 발행 당시 회사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다양하게 담겨있다. 월트디즈니의 주권에는 설립자인 월트 디즈니의 모습과 피노키오, 곰돌이 푸 등의 디즈니 캐릭터들이 담겨있다. 또 항공기 제작사 보잉사의 주권에는 보잉사에서 만든 수상비행기와 설립자 윌리엄 보잉 등의 모습이 담겼다.

사진=경기도 일산 예탁결제원에서 발행된 체험용 증권용지. 증권에는 시대상과 발행 당시의 소망이 담긴다. (체험용 증권에 일찍 퇴근하고 싶은 이 시대 직장인의 염원을 대신 담아봤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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