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객, '혈액 클렌징' 받으러 한국행

핏속 노폐물 걸러주는 '명품치료'로 인기...의료계선 '사이비 치료' 경고

기사승인 2019-11-29 04:00:00
- + 인쇄

의료관광객, '혈액 클렌징' 받으러 한국행

# 중국 등을 대상으로 미용 관련 의료관광산업에 종사한다는 A씨는 "요즘 관리한다는 사람들은 피도 관리한다"고 했다. 한국을 찾는 의료관광객들에게 혈액을 깨끗하게 걸러준다는 혈액정화요법이 암암리에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암예방이나 노화방지, 그리고 고지혈증에 좋은 명품 치료로 유명하다. 적게는 400~500만원에서 1000만원 이상 호가하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의료관광객 사이에서 '피를 깨끗하게 걸러주는' 특이한 치료법이 화제다. 일명 '혈액 클렌징(혈액정화요법)'이라 불리는 이 치료법은 채취한 혈액에 의료용 오존을 주입해 오존반응을 일으키거나, 빛을 쪼여 살균시킨 뒤 다시 체내로 되돌려주는 등의 방법이다.

해당 치료법을 시행하는 한 의료기관에서는 "혈액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 동맥경화 유발물질, 활성산소 등 각종 노폐물을 정화시켜 다시 체내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라며 "각종 만성질환 예방과 노화방지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남을 비롯한 미용 관련 의료기관이나 의료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일부 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개 항암, 노화방지, 고지혈증 치료, 면역력 향상, 피로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며, 성기능개선, 손발 저림 개선 등의 효능을 내건 곳도 있었다. 또 기존에 중금속 중독 환자들에게 시행하는 킬레이션 치료법도 '혈관청소치료', '혈관해독치료'로 둔갑해 홍보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대기오염과 해양오염, 각종 스트레스 물질로 현대인의 중금속 중독이 심각하다는 경고가 따라 붙는 식이다.

옆나라 일본에서도  '혈액클렌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이 치료를 받는 사진, 경험담 등이 공개되면서 인터넷상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일본 국회에서 '혈액 클렌징' 유행에 대한 질의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치료법들은 일반 신장질환 환자들이 받는 혈액투석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의학적으로 검증된 표준치료법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이나 미용에 관심이 많은 이들, 그리고 암, 중증질환으로 '기적'을 찾는 의료관광객과 국내 환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고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근거없는 치료'라며 혀를 찬다. 한 개원의는 "약 10년 전 불주사라며 혈관에 빛을 쏴주면 혈관을 소독해준다는 사이비 치료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사이비적 의료행위로 보인다"며 "대상 환자군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효과가 불분명하고, 근거가 부족하다는 반증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개원의도 "의학교육 과정에 있는 내용이 아니고, 일반적인 의료기관은 시행하지 않는다. 다소 실험적인 치료법인 것 같다"고 평했다.

문제는 '혈액 클렌징' 효과는 커녕 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위험성이 더  크다고 경고한다. 김세중 분당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피를 뽑아 정화한 뒤 다시 넣어주는 과정에서 감염, 출혈, 혈종 등이 발생할 수 있고, 혈액 속 전해질 등 조절물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일반 혈액투석은 신장기능이 15% 미만인 사람에게 시행하고, 투석은 신장기능의 10~15%를 더해주는 것이다. 이미 신장기능이 60% 이상으로 높은 분들은 굳이 추가적인 조치를 하지 않아도 우리 몸의 신장이 알아서 나쁜 물질을 배출한다. 신장기능이 안좋은 환자들은 위험을 감안하고서라도 독소를 걸러주는 치료가 도움이 되지만, 건강한 사람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근거가 희박한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킬레이션 치료에 대해서도 그는 "해양 기름누출 사고, 폐류 방류 등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중금속 노출이 높아졌거나, 과거 일부 투석 환자에 사용됐던 표준치료법이다. 중금속만 흡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다른 전해질도 흡착해 내보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환자들에게 선택적으로 해야하며, 건강증진 등 예방적 목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일상생활에서 킬레이션이 필요한 정도로 중금속 농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고 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