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발트, 열다섯 번째 이야기

기사승인 2019-12-05 00: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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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디미나스 언덕에서 내려와 빌니우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 앤 교회(Šv. Onos bažnyčia)까지는 걸어갔다. 빌니아 강 바로 북쪽에 있어서 다리를 건너면 우주피스 지역으로 건너갈 수 있다. 

벽돌로 화려하게 지은 고딕양식의 성 앤 교회는 1495~1500년 사이에 폴란드 왕이며 리투아니아 대공인 알렉산드라스(Aleksandras)의 발의로 다시 지었다. 리투아니아의 비타우타스 대공의 첫 번째 부인 앤을 위해 나무로 지은 첫 번째 교회가 1419년의 화재로 불탔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교회 역시 1582년 심각한 화재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공사를 했다. 이후에도 전쟁 등으로 피해를 입어 재건을 했지만, 교회의 외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1762년에 정면의 입구를 보강하면서 숨겨졌던 측면 아치는 1902~1909년 사이의 재건공사에서 다시 드러나게 됐다. 

1812년 러시아 원정길에 이 교회를 본 나폴레옹은 손바닥에 담을 수 있다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빌니우스가 아주 아름다운 도시라고 적었다. 

성 앤 교회는 뒤편에 있는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베르나딘) 교회(Vilniaus šv. Pranciškaus Asyžiečio(Bernardinų) parapija)와 조화를 이루도록 지어졌다. 교회의 설계는 바르샤바에 있는 성 안나 교회를 설계한 마이클 엔킹거(Michael Enkinger), 혹은 보헤미아의 건축가 베네딕트 레지트(Benetikt Rejt)가 했다고 전하지만 기록에 남은 것은 없다. 

교회는 1개의 본당과 2개의 탑으로 구성돼있는데, 33종류의 점토 벽돌을 사용해 지었고 붉은색을 칠했다. 고딕 양식의 아치에는 직사각형 요소가 가미돼, 정면에서 보면 대칭적이고 비례하는 모양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교회의 전면을 자세히 보면 ‘A’와 ‘M’자가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틴어로 ‘Ana Mater Maria’ 또는 ‘Ave Maria’를 상징하는 알파벳이다. ‘마리아의 어머니, 앤 성녀’ 혹은 ‘성모찬가’를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리투아니아의 오래된 상징이며 국장 가운데 하나인 게디미나스의 기둥(Column/Pillars of Gediminas)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교회 전면에 세운 3개의 탑이 게디미나스 기둥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제단을 비롯한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됐다. 가이드는 교회 안에 들어가면 목각을 챙겨보라고 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 교회 안에 들어가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뒤편에 서서 살펴보니 소박해 보이는 교회 내부의 양쪽 벽에 걸린 나무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나타내는 십자가의 길(Via Crucis)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성 앤 교회의 오른쪽 광장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 낭만주의 시인으로 추앙받은 아담 베르나르드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의 기념비가 있다. 1925년 실시된 대규모 공모전에 67점이 출품됐지만, 우승작의 지나친 표현이 문제가 돼 새로운 추천절차가 있었다. 이 또한 자금과 설치 장소 등의 문제가 얽혀 지연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취소됐다.

1980년대 다시 추진된 기획에 따라, 리투아니아 조각가 게디미나스 야코보니스(Gediminas Jokūbonis)와 건축가 비타우타스 에드문다스 체스카나우스카(Vytautas Edmundas Čekanauskas)의 협업으로 진행한 현재의 기념비가 세워진 것이다. 

볼히니아(Volhynia)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깨진 기둥에 기대고 있는 미츠키에비치의 모습을 나타낸 4.5m 높이의 기념비는 1984년 4월 18일에 공개됐다. 1996년에는 최초의 기획전에서 확정됐던 헨릭 쿠나(Henrikk Kuna)가 제작한 6개의 부조를 기념비 주변에 설치횄다. 헨릭 쿠나는 미츠키에비치의 대표작인 시극 ‘선조의 밤(Dziady)’에서 뽑은 12개의 부조 가운데 6개를 완성한 상태였다. 

성 앤 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구시가로 향했다. 구시가로 향하는 중간에 왼쪽에 작은 개울 건너에 우주피스 공화국이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칼리닌그라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일찍 통과했더라면 성 앤 교회를 구경하고 나서 우주피스 공화국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을 터인데 아쉬운 일이다. 

우주피스공화국은 리투아니아 구시가의 언덕 아래를 흐르는 빌니아 강 건너편에 있는 구역이다. 리투아니아어로 우주피스(Užupis)는 ‘강 너머’ 혹은 ‘강 반대편’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은 빌니아 강을 의미하며, 빌니우스라는 도시이름도 빌니아 강에서 유래한 것이다. 

빌니우스에서 동동남쪽으로 벨라루시의 국경 가까운 숨스카스(Šumskas)의 빈드지우나이(Vindžiūnai) 마을 부근에서 기원해 벨라루시와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따라 흐르다가, 빌니우스에서 네리스 강에 합류하는 79.6km의 강이다. 

우주피스는 면적이 60ha(헥타르)에 불과한 작은 구역이다. 주민은 약 7000명인데 이 가운데 약 1000명이 예술가다. 빌니아 강에 다리가 놓인 것은 16세기이며, 당시 지역주민 대부분은 유대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유대인들은 대부분 살해됐다. 

전후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소련은 우주피스 지역을 방치했다. 버려진 집에는 노숙자나 매춘부 등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변경인들이 들어와 살았다. 1990년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기 이전부터 보헤미아 사람들이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다. 마을 분위기는 파리의 몽마르트르나 코펜하겐의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와 비교됐다. 

1998년 4월 1일 이 지역의 주민들은 우주피스공화국을 선포하고, 대통령과 내각의 장관을 정했다.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영화감독인 로마스 릴리이키스(Romas Lileikis)와 토마스 체페티스(Tomas Čepaitis)가 기초한 헌법, 국기와 국가, 비공식 통화, 및 11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군대까지 갖췄다. 

로마스 릴리이키스는 우주피스공화국의 대통령이다. 우주피스 광장에서 파우피오스(Paupio) 거리로 들어가면 담벼락에서도 우주피스공화국의 헌법을 볼 수 있다. 공화국 헌법은 모두 38개에 이르는 권리와 책임을 규정한 조항과 ‘패배하지 말 것’, ‘반격하지 말 것’, ‘항복하지 말 것’ 등을 명문화한 3개항을 더해 모두 41개 조항으로 돼있다.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는 다리는 모두 5개지만, 마리오니스(Maironio) 거리의 정교회 옆에 있는 다리가 주요 출입구라 할 수 있다. 이 다리 옆으로 강가에 쌓은 축대 틈에는 조각가 로마스 빌치아스카(Romas Vilčiauskas)가 2002년에 제작한 우주피스 인어(Užupio undinėlė) 상이 설치돼있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처럼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우주피스에 오도록 유혹하고 그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는 뜻이 담겼다. 같은 해, 로마스 빌치아스카는 나팔을 부는 가브리엘천사의 모습을 한 우주피스 천사상을 제작해 우주피스 중앙광장에 세웠다.

우리에게 우주피스공화국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하일지 작가가 2009년에 발표한 ‘우주피스공화국’ 덕분인지 모른다. 작품은 40대의 동양인 남자 ‘할’이 어느 추운 겨울 리투아니아에 입국해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할은 아버지의 유골을 묻기 위해 고국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는 길이다. 한(Han)이라는 동방국가에 주재하던 우주피스공화국 대사였던 할의 아버지는 우주피스공화국이 주변국가에 점령되자 한으로 망명했다. 죽기에 즈음해 우주피스공화국이 독립되면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최근에 고국이 독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주피스공화국에 가기 위해 빌뉴스에 도착한 할에게 이상한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택시 운전사는 우주피스공화국으로 가자는 할을 우주피스라는 이름의 호텔에 데려다 주는가 하면, 블라디미르라는 사람은 우주피스공화국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농담으로 만든 나라라며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틈에서 우주피스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곳곳에서 우주피스공화국의 흔적과 부딪히면서 할은 눈길을 뚫고 우주피스공화국으로 향하게 된다. 할이 우주피스공화국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요르기타라는 이름의 미망인, 눈 덮인 촌락에서 만난 요르기타라는 노파는 같은 사람이고, 그녀들의 남편이 할 자신이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들지만, 작가는 끝까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의문이 풀리지 않은 이유는 할이나 요르기타 모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등장인물 주변의 사물이 익숙하다는 느낌마저도 분명치 않아서다. 할과 요르기타는 서로 왜곡된 시간 사이를 여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지역이 과거 유대인들이 모여 달던 장소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할이 찾아가는 우주피스공화국은 허공 속으로 산산이 부서져버린 유대인들의 나라는 아니었을까?

우주피스 공화국을 지나 구시가로 들어선 버스는 ‘새벽의 문(Aušros vartai)’ 부근에서 섰다. 고딕양식으로 된 새벽의 문은 타타르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1503~1522년 사이에 건설한 빌니우스의 성벽에 낸 5개의 성문 가운데 하나다. 성문은 벨로루시와의 국경 가까이 있는 메디닌카이(Medininkai) 성, 그리고 국경 너머에 있는 크레이바((Krėva) 성으로 가는 A3국도로 나가는 길의 시작이다. ‘메디닌카이 문’이라고 불렀던 것을 20세기 초부터 ‘새벽의 문’으로 부르게 됐다. 1621~1626년 사이에 문 안쪽으로 카르멜 라이트 수도원을 세웠다. 

성문은 9개로 늘었는데, 1799~1802년 사이에 러시아 정부의 명령에 따라 새벽의 문만 남기고 모두 파괴됐다. 훗날 ‘새벽의 문’ 아치 위에 다락방을 올렸고, 여기에 들어선 예배당에 자비의 어머니인 축복받은 성모의 아이콘을 뒀다. 심지어 독특한 검은 성모의 아이콘이 기적의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새벽의 문은 빌니우스에서 중요한 역사적·종교적 유물이 됐으며,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 모두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벽의 문을 경계로 밖의 거리풍경과 안의 거리풍경은 사뭇 달랐다. 바깥쪽에 있는 건물은 쇠락해가는 느낌이었는데, 새벽의 문 안쪽 풍경은 말끔하고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특히 리넨(linen) 제품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디자인을 전공한 여행작가 방수연은 ‘발트 여행노트’에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서 리넨을 다루는 공방을 찾아가는 여정을 소개했다. 이들 나라는 리넨을 다루는 솜씨가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리넨은 아마(亞麻)라는 식물의 섬유로 만드는 직물, 아마포를 이른다. 열전도율이 높고 뻣뻣하기 때문에 여름에 입으면 시원하고 편해서 인기가 높지만 쉽게 구겨지는 단점이 있다. 주로 식탁보, 냅킨, 행주, 손수건 등으로 사용된다. 린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은데, 리넨이 옳은 말이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발트, 열다섯 번째 이야기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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