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크러쉬 “전 아직 깨어나기 전이에요”

5일 오후 6시 정규 2집 발매

기사승인 2019-12-0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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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크러쉬는 2년 전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보며 자신도 그와 비슷한 처지라고 느꼈다. 유행이 끝나면 옷장 속에 갇혀 잊히는 옷처럼, 자신도 쉽게 소모되고 버려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에겐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들을 가사로 적어내기 시작했다. 5일 서울 강남대로의 카페에서 만난 크러쉬가 들려준 정규 2집 ‘프롬 미드나잇 투 선라이즈’(From Midnight To Sunrise) 작업기다.

“누구나 자신의 느끼는 외로움과 슬픔, 힘듦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누군가를, 제 음악으로 위로하고 싶었죠.” 크러쉬는 이런 생각으로 정규 2집에 실릴 12곡을 추렸다. 공황장애를 앓던 시절, 먼지 쌓인 옷들을 보며 느낀 불안은 ‘클로드’(Cloth)라는 곡에 담았다. 이 노래에서 크러쉬는 ‘옷’(Cloth)이 아닌 ‘가까운’(Close) 누군가가 되겠다고 노래한다. 소모품이 아닌 동반자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타이틀곡은 ‘얼론’(Alone)과 ‘위드 유’(With You). 크러쉬는 대중성과 관계없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을 이 음반의 얼굴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얼론’의 가사를 특히 좋아한다. “너무도 거친 바람에 나 괴로워할 때, 그 작은 어깨가 내겐 커다란 나무였어.” ‘수록곡 가사 가운데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얘기는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크러쉬는 ‘얼론’의 가사 한 구절을 읊으며 “먹먹하다”고 했다.

“누군가의 음악에서 위로를 받고 치유를 경험한 기억이 많아요. 이번엔 제가 감동을 주고 싶었죠.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이 음반은 인간 신효섭(크러쉬)의 ‘젊은 날의 초상’이랄까요, 제 청춘을 담은 느낌이에요.”

[쿠키인터뷰] 크러쉬 “전 아직 깨어나기 전이에요”자신이 속한 크루 ‘팬시차일드’의 이름처럼, 크러쉬의 음악은 세련되고 멋스럽다. 알엔비 힙합에 뿌리를 박고, 고전과 트렌드를 유려하게 엮어낸다. 그는 “지금은 유행이 무의미해진 시대”라고 봤다. “자신이 원하는 시대를 선택해서 살 수 있는 세상이에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옛날 음악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잖아요.” 크러쉬 또한 198~90년대 음악을 좋아하고 영향도 많이 받는다. 타이틀곡 ‘얼론’이 대표적인 예다. 부드럽고 달콤한 분위기가 1990년대 알엔비 발라드를 연상케 한다.

크러쉬는 이 음반으로 “가수 인생 2막”을 시작했다고 했다. 열정, 패기, 음악적인 욕심이 지배적이었던 정규 1집과 달리, 2집은 목소리와 선율, 메시지에 집중해서다. “이번엔 힘을 뺐죠. 자연스러운 변화였어요.” 크러쉬는 3년 전 ‘원더러스트’(Wonderlust) 음반을 작업할 당시부터 ‘내면의 이야기’를 담는 데 집중했다고 한다. 이후 낸 싱글들에서 음악 실험을 반복하다가, 2집을 통해 “번지수를 찾았다”고 했다. 크러쉬는 그러면서도 “음악적인 정체성은 계속 바뀌어 나간다고 본다”며 “앞으로 이런 음악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음반을 통해 더 성장해나갈 힌트를 얻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음반 제목 ‘프롬 미드나잇 투 선셋’은 크러쉬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만들어졌다. ‘원더러스트’ 작업에 매달리고 있던 3년 전 어느날, 그는 머리를 식히려고 한강으로 나섰다. 시간은 오전 5시39분. 동쪽은 해가 완전히 떠 있는데, 서쪽은 아직 깜깜한 밤이었단다. 크러쉬는 이 신비로운 광경을 보며 ‘내 인생은 어디쯤 와있는가’ 자신에게 물었다고 한다. ‘프롬 미드나잇 투 선셋’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제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저는 지금 오후 12시5분 쯤에 와있는 것 같아요.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죠. 힘이 닿는 한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그리고 근본적인 목표거든요. 그래서 ‘저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12시5분에 지금을 빗댄 건, 앞으로 더 성장 하고 싶다는 의미에요. 저는 더 깨어나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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