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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초점] ‘방탄소년단 현상’을 이해하는 키워드

이은호 기자입력 : 2019.12.12 17:59:47 | 수정 : 2019.12.12 17:59:53

사진=한국언론학회 제공

“여기 BTS 팬들은 얼마나 계시죠?” 학구열로 달아오른 행사장 분위기가 잠시 부드러워졌다. 11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특별 세미나 현장. 두 번째 세션 토론자가 “BTS 영상이 나오는데, 함성이 적은 것 같다”고 농을 치며 이같이 묻자 행사장엔 작은 웃음이 일었다. 일반인들은 물론 ‘아카-팬’(Academic Fan)을 자처하는 몇몇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이날 세미나는 ‘BTS 너머의 K팝: 미디어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를 주제로 열렸다. 8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에는 50여명의 국내외 학자들과 학회 회원, 일반인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김춘식 한국언론학회 회장은 “K팝을 글로벌 팝 컬쳐로 성장시킨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문화 현상을 다층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높아 이번 글로벌 세미나를 열었다”며 “한류 현상에 대해 하루 종일 세미나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 소셜 미디어 시대의 혼종성과 진정성

학자들은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K팝의 특징을 ‘혼종성’(hybridity)에서 찾는다.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연결·조합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종성은 K팝에 다른 문화권 음악과 구분되는 독특한 특징인 동시에, 보편적인 소구력을 가져다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K팝은 서구권 음악 요소와 비서구권, 특히 한국적인 정서를 차용·혼합해 글로벌 팬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 교수의 연구팀이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214명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즐길 수 있는 음악’이었다.

진 교수팀은 또한 조사 대상자들의 의미 있는 답변 중 하나로 ‘메시지’, 구체적으로 4부작 음반에서 설파한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를 꼽았다. “불균형·불균등·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방탄소년단과) 경험을 공유하며 정서적 친밀감과 동일시를 이루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과 메시지는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퍼진다. 김주옥 미국 텍사스 A&M 국제대학 교수는 ‘주변부’에서 탄생한 방탄소년단이 열광적인 ‘BTS 현상’을 일으켰으며,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디지털 혁신’이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일으킨 변화로 우리는 새로운 패턴의 문화 교류를 경험하고 있고, 이것이 ‘유튜브 시대의 비틀스’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뒷받침했다”고 분석했다.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초문화적 팬덤의 탄생

주목할 만한 것은 학계에서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덤을 단순히 ‘초국가적’이라고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초문화적’인 성격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 현상’이 소셜 미디어와 영관이 깊은 만큼, 방탄소년단이 지역이나 국가보다 인종·나이·젠더 등을 초월했다는 점에 더욱 의의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초문화적 팬덤에 관한 접근은 ‘각 문화권의 특징이 ’방탄소년단 현상‘에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문화권별로 상이한 반응에 관한 발표가 여럿 나왔다.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한국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베르비기에 마티유는 지난해 9월 RM의 유엔 연설에 대한 한국과 해외 팬들 간 반응 차이를 분석했다. 해외 팬들은 RM이 연설 중 언급한 ‘성 정체성’에 주목한 반면, 한국 팬들은 보다 넓은 개념에서의 ‘용기’로 연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마티유는 “트위터 메시지 수집 결과 해외 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해석한 반면, 한국 팬들은 ‘애국심’ ‘자랑스럽다’ 등의 단어를 (연설과) 함께 언급하며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흑인 여성 팬덤이 방탄소년단을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석사 이지원 씨의 연구도 흥미롭다. 이 연구원은 흑인 팬덤이 K팝이 자신들의 문화를 차용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면서, 특히 흑인 여성 팬덤의 경우, “남성적인 기준으로만 평가됐던 힙합의 진정성과 흑인성을 방탄소년단이라는 혼종적 문화 산물을 통해 새롭게 사고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남성의 전유뮬로 여겨졌던 힙합을 흑인 여성들이 여성적인 언어로 소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또한 섹시하되 로맨스의 대상에선 배제됐던 흑인 여성과 무성애적으로 그려졌던 아시아 남성 간의 관계 생성을 “기존의 미디어가 제시한 인종-젠더 관계 질서에 대항”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사진=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방탄소년단과 포스트포드주의

방탄소년단이 K팝 제작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영국 워릭대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동준 씨는 이를 ‘포스트 포드주의’에 비유했다. 이 연구가는 기획사 중심의 하향식 아이돌 브랜딩을 포드주의(일관 작업 방식)로 봤다. 서양 문화권에서 그간 K팝을 두고 ‘공장형 아이돌’ ‘로봇형 아이돌’이라고 비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 방탄소년단은 음악과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자신만의 브랜드를 자율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이 반영된 브랜드는 참여문화 속 팬덤의 재생산을 통해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그룹 빅뱅처럼 방탄소년단 이전에도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어 인기를 누린 팀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 연구를 반박하기도 하지만, 방탄소년단 이후 개인의 정체성에 집중한 아이돌 그룹이 대거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다. 이 연구가는 “(아이돌의) ‘자율성’과 ‘예술적 창의성’을 모두 육성함으로써 예술적 정체성의 자기 학습과 자기 형성을 촉진하도록 시스템이 개편되고 있다”면서 “현대 K팝의 포스트포드주의적 문화 생산의 관점에서 아이돌은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이라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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