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가 된 암환자의 사연…협동조합 ‘다시시작’

국내 최초로 공공의료기관-지자체가 지원

기사승인 2019-12-13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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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연원 대표 “소아청소년 암생존자도 사업 계획 中”

국내 암환자 3명 중 2명 이상은 5년 이상 생존…사회적 편견 여전 

 

사업가가 된 암환자의 사연…협동조합 ‘다시시작’

유방암 환우회 회원들이 차린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이 사업을 본격 시작했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지고 피부에 각질이 일어났던 조합원들의 경험을 살려 천연재료를 사용한 세안비누 및 샴푸바를 제작‧판매한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은 후부터 판매해 발생한 수익금 중 일부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암환자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다시시작’은 국립암센터와 경기도 고양시가 유방암 환우 자조모임 ‘민들레회’ 회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일환으로 추진한 지원 사업의 결과물이다. 암환자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안연원 대표(전 민들레회 회장) 또한 병을 이겨내고 사회 복귀를 했다는 성취감과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을 돕는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2일 만난 그의 모습은 1년 전과도 사뭇 달랐다. 안 대표는 지난해 8월 국립암센터와 고양시가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암환자 대상 일자리 창출 업무 협약’을 맺을 때 처음 만났다. 당시 안 대표는 “쓸모없는 장롱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젊고, 일할 수 있고, 의욕도 있지만 일을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직업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얼마를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거, 소속감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토로하며 암생존자들의 사회복귀를 그 누구보다 희망했다.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일을 안 하던 사람에게 해야 할 일이 주어지니 얼마나 기쁘겠나”라면서 “이제는 병을 이겨내고 새 인생을 산다. 엄마와 암환자로 살던 환우들이 이제는 다시시작의 이사들이라 포스(분위기)가 달라졌다”라고 밝혔다.

‘다시시작’의 사무실은 코레일의 협력을 통해 경의·중앙선 백마역 역사에 있던 ‘리본(ReːBorn)’센터를 활용했다. 리본은 암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사회 복귀지원센터다. 이곳에서 제품 전시는 물론 모든 암종의 암환자와 암생존자들에게 사회적경제 기업 창업을 위한 교육과 컨설팅 제공이 이뤄지고, 일자리도 연계된다. 피로감 등 환자들이 겪는 체력적 한계를 고려해 LG전자의 후원을 받아 휴식 시설도 완비했다.

안 대표는 사업 확장을 위해 현재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으며, 암환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경제기업 제2호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2호는 소아청소년 암환자 중 암을 극복하고 성인이 된 생존자들이 주체가 됐다고 안 대표는 말했다. 

그는 “건강 때문에 취약계층이 된 이들이 당당하게 사업가로 활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암환자, 암을 극복한 생존자의 이러한 활동은 본인과 보호자들에게는 물론 사회에도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는 한 가정의 엄마다. 엄마들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라며 “사회에서도 격려하고 응원해준다면 우리도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치료 기술 발달 등의 이유로 암을 극복한 암생존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암 치료 후에도 신체·정신·사회경제적인 복합 문제를 겪고 있어 국가 차원의 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암센터에 따르면, 암환자 3명 중 2명 이상은 5년 이상 생존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암생존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16년 기준 174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3.4%를 차지한다.

암생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도 존재한다. 일반인 1500명을 대상으로 암생존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암 생존자라는 것을 들어본 적 없다’(36%), ‘암생존자의 직업 능력은 정상인보다 낮다’(57%), ‘가족 중 암생존자가 있는 사람과의 결혼을 피하고 싶다’(63%) 등의 편견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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