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양준일의 1991년과 2019년

기사승인 2019-12-20 19: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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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양준일의 1991년과 2019년

가수 양준일이 돌아왔습니다. 약 30년의 시간을 넘어 대중 앞에 다시 선 것이죠. 소속사를 구하고 팬 미팅을 개최하는 등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양준일이 미국에서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한 번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먼저 올해 하반기에 불어닥친 ‘온라인 탑골공원’ 열풍이 시작이었습니다. 90년대 방송된 SBS ‘인기가요’를 24시간 송출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던 네티즌들은 가수 지드래곤을 닮은 양준일을 발견합니다. 9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가수가 현재 인기가 많은 유명 가수와 닮았다는 사실도 신기한 일이지만, 더 큰 주목을 이끌어낸 건 그의 패션과 음악이었습니다. 지금 보고 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감각을 영상 속 양준일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활동을 이어가는 대다수 가수들과 달리 그는 어떤 무대에서도, 방송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왜 양준일이 추억의 가수로 호명되지 않고 사라졌는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대중의 궁금증을 낳기 시작한 출발점입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준 것이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입니다. ‘슈가맨3’는 2015년 첫 방송을 시작해 벌써 세 번째 시즌에 돌입한 프로그램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를 찾아 무대로 소환하는 콘셉트입니다. 양준일은 누구보다 ‘슈가맨’에 가장 어울리는 가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시즌3를 시작하고 두 번째 회차에 양준일이 등장한 것이죠. 양준일은 과거와 다를 바 없는 패션과 안무, 무대매너로 시청자들을 감탄케 했습니다. 그가 지금은 음악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식당 서빙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생계유지를 위해 한국행을 망설였다는 사실 등의 근황을 직접 이야기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양준일은 팬 카페가 만들어진 것도 알고 만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미국에서 하는 일을 더 미룰 수 없어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양준일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있는 팬들을 만나러 오기로 결심한 것이죠. 국내 소속사인 위엔터테인먼트가 주최를 맡은 '2019 양준일 팬미팅 양준일의 선물'은 31일 서울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립니다. 2001년 얼굴 없는 그룹 V2 활동을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떠난 다시 18년 만에 돌아와 공식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죠. 팬 미팅뿐 아니라 최근 그에게 방송, 화보, 광고 제의가 쏟아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일 오전 입국한 양준일의 소식을 접한 팬들은 ‘환영해요 양준일’을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친절한 쿡기자] 양준일의 1991년과 2019년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대중이 양준일의 귀국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나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그가 드라마 같은 해피엔딩 서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양준일의 귀국에는 어두운 이면도 존재합니다. ‘슈가맨3’에서 고백했듯 90년대 연예계와 대중은 자유분방한 양준일의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한국에서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양준일의 입장에서도 황당할 노릇입니다. 양준일은 활동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비자 갱신을 거부당한 에피소드를 전했습니다. 93년 발표한 그의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의 간주 내레이션만 들어봐도 당시 대중이 양준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91년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양준일이 2019년 환영받고 있습니다. 28년의 시간 동안 대중문화계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갖췄고 가수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하고 밀어내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죠. 하지만 28년 후인 2047년에 2019년을 돌아보면 분명 ‘어떻게 저런 일이 있었지’ 하며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가수 양준일이 주는 진짜 교훈은 1991년이 아닌 2019년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 아닐까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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