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의 폭력, 우울증일 수 있다

노인 낙인, 노화로 인한 불안감 등 원인

기사승인 2020-01-14 0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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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8세가 된 A씨는 그동안 머리가 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을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건강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을 느끼면서 ‘노인’이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자식들은 아직 어린데 어느 순간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니 불안해졌다. 자식들 결혼 자금은 보태줄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노화에 대한 불안감’이 중고령층의 우울증과 연관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게재된 연구보고서 ‘중고령자의 노인낙인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중고령자가 노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할수록 노화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우울증으로도 이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화불안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 두려움 등 불안한 심리상태를 의미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연구에서는 노화불안 척도로 ‘나는 노년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까봐 두렵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이 많을 것이다’(심리적 불안정), ‘나는 더 젊게 보이려고 나이를 속여본 적이 없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렵다’(외모에 대한 걱정), ‘나는 늙으면 내 친구들이 사라질까봐 두렵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이 걱정된다’(상실에 대한 두려움) 등의 문항을 사용했다.

‘2018년 연령통합 및 세대통합조사’ 자료의 45세 이상 중고령자 590명을 분석한 결과, 중고령자의 ‘노인 낙인’ 점수가 높을수록 노화불안이 높아졌는데, 이는 ‘노인 낙인’이 노화가 촉진되는 시기에 놓인 중고령자에게 노화불안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노인 낙인은 한국사회가 노인에게 부여한 부정적 속성에 대해 일반인들의 인식을 측정하는 척도다. ‘노인은 젊은 사람들에게 권위적이다’, ‘노인은 고루하고 보수적이다, ‘노인은 무거운것을 잘 들지 못한다’, ‘노인은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노인은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노인은 자식에게 간섭하려 한다’ 등의 문항으로 구성됐다.

또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일수록,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집단일수록, 경제적 상태가 취약하다고 인식하는 집단일수록 우울 수준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노화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중년기 이후 사회적 관계망의 위축, 신체적 기능약화, 정서적 어려움 등을 함께 경험하기 때문에 노화불안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중고령기는 노화를 직접적으로 인지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노화현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고령층의 우울증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연령은 5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 보면, 60대가 13만371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50대(12만9255명), 70대(12만1193명), 20대(9만8434명), 30대(9만3389명), 80세 이상(5만6431명) 순이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울증은 다양한 신체적‧심리적 증상을 나타내며, 남성의 경우 폭력이나 극단적 상황의 위험성을 높이기도 한다. 신철민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있으면 뇌 전두엽 기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이는 자기조절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면서 “이때 무기력증, 불면증, 식욕 저하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울증 증상이 아닌, 과도하게 음식을 먹거나 수면을 취하는 ‘비정형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남성의 경우 폭력에 노출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이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성을 표출하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 폭력성이 자신에게 나타나면 자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중고령층의 우울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노화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중년기 이후의 노화는 신체적・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우선 자신의 건강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고, 건강관리법에 대한 교육 등 노년기 준비 프로그램을 개발해 노화적응을 돕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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