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틈 같은 여백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창구다

입력 2020-01-17 09:08:38
- + 인쇄

지난 주말에 읽은 이해인 수녀님의 새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의 끝에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과 수녀님이 나눈 인터뷰가 실렸다. 오늘 아침 사진은 동네 탄동천에서 지난 주말에 찍은 것이다. 머리가 산발이고 흩어져도 꼿꼿이 서서 흔들리는 갈대가 오늘의 화두와 어울린다고 나는 보았다. '자기의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난해 몇 달 동안 우리 시민들의 마음은 갈라진 광장 속에서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지금도 나아진 건 없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녀님은, 종교학에서 말하는, '판단 보류의 영성'을 이야기하셨다. 이 말은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라 하자'는 것이다. '함부로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다. '판단 보류', 나도 이것을 실천하려고 늘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수녀님의 생각은 이 거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한데, 잘나면 얼마나 잘 났을까? 인간이 한 세상 사는 동안 서로 연민하며 사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인정해주는 겸손, 자기의 약점을 항상 자랑할 수 있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고 수녀님은 강조하셨다. 

그 다음은 사랑받고 사랑하는 묘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셨다. 수녀님은 사랑받는 비결은 마음에 안 내킬 때도 먼저 다가가는 용기라고 하셨고, 사랑하는 비결은 상대가 원할 만한 것을 먼저 헤아려서 기쁨을 주는 지혜라고 하셨다. 그리고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할 것을 잘 분별할 줄 아는 것이고도 하셨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손택수 시인의 시는 이 산문집 178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사실 나도 약간 칠칠하고 야무지지 못하다. 그래 옷에 음식을 묻히곤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아침 시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라는 구절에서 위안을 받는다. 다른 이들에게 늘 멋지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부끄러운 생각이 들더라도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가장 인간적인 것은 거룩한 것과 통한다'고 했다. 어떤 때 우리는 훌륭함으로 인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오히려 때때로 못나고 허술한 게 훨씬 따뜻하고 좋을 때가 있다. 수녀님에 의하면, 허술하다는 게 아무렇 게나 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여백을 허용하는 거란다.

이 여백이 우리에게 여유를 준다. 나는 '3 유'를 좋아한다. '자유, 사유 그리고 여유'. 스포츠에서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게임을 하는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 있는 집중'이다. 이 말은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다. 그냥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라는 말이다. 목표를 보지 말고, 눈 앞에 해야 할 일만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런 거대 담론보다 눈 앞의 일에 우선 집중하라고, 팀 페리스는 자신의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탁월함은 앞으로의 5분이다. 혁신이나 개선도 앞으로의 5분이며, 행복도 앞으로의 5분 안에 존재한다." 이 말은 계획을 싹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빅 픽처(큰 그림)나 담대한 계획을 세우되, 그 커다란 목표를 가능한 한 작은 조각으로 해체해서 한 번에 하나씩 '충격의 순간(point of impact-테니스에서 공이 라켓과 접촉하는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눈 앞의 일에서 벌어지는 실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곧장 새로운 인생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용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실수한 날이 지나, 아침에 일어나면 세상은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겪는다. 아니 세상이 끝났다고 해도,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신은 앞 문이 닫히면, 뒷문을 열어 놓는다. 살아 보니 그렇다.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가끔은 민망한 김치 국물 한 두 방울 쯤/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일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빈틈없는 사람은 박식하고 논리 정연해도 정이 가질 않는다. 틈이나 흠같은 허술함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있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틈 같은 여백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창구이다.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그 빈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여백, '틈'은 허점이 아니라, 여유이다.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틈 같은 여백이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창구다가슴에 묻은 김칫국물/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 와이 셔츠
가슴팍에
김치 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 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치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치 국물 한 두 방울 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일이다

박한표(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