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터뷰] ‘스피릿’ 이다윤의 목표, ‘완벽함’과 ‘증명’

[쿡터뷰] ‘스피릿’ 이다윤의 목표, ‘완벽함’과 ‘증명’

기사승인 2020-0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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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릿’ 이다윤은 장난기가 많다. 평소 동생들에게도 “형님”이라고 부르며 팀 내 분위기 메이커를 맡고 있다. 그러나 21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다윤은 생각 이상으로 진중했다. 그는 “이제 프로게이머로 치면 늙다리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또 요즘 세상이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는 세상이다. 세상이 세상인지라 말을 조심하게 된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중요해진 시기라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다윤은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섰다. 데뷔 2년차였던 2014년 ‘리그오브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삼성 블루 소속으로 스프링 시즌 우승과 서머 시즌 준우승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친 뒤 2017시즌을 앞두고 아프리카 프릭스에 입단하며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이후 2년간 아프리카의 주전 정글러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어느덧 아프리카에서만 4년차다. 현 시점에서 아프리카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선수다.

2019년은 이다윤에게 굴곡이 많았던 한 해였다. 갑작스럽게 팀의 맏형이 돼 주장을 맡았다. 또 스프링 시즌에는 정글러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출전했다. 서머 시즌에는 한 세트도 소화하지 못했다.

이다윤은 “내가 이전까지는 팀 내에서 막내 포지션이었다. 항상 팀이랑 있을 때 편하게 다가기도 하고 많은 걸 내려놓는 편이었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팀에서 맏형이 됐다. 말을 조심하게 되고, 언행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워 졌다.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다윤은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아쉽다. 언제라도 팀이 필요로 하는 상황이 오면 나를 희생할 생각이 있었다. 팀이 있어야 선수가 있는 거고, 선수가 있어야 팀이 있듯이 팀과 선수는 하나다. 융화라는 것에 많은 목적을 두고 있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다”고 얘기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그는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2019 LoL KeSPA CUP ULSAN'(케스파컵)에 뛰어들었다.

이다윤은 “이번 대회에서 지난해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뒀다. 지난해에는 5명의 선수들이 개인의 힘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는 개인이 돋보이기 보다는 팀으로 하나가 돼서 경기를 풀어가려는 목표가 있었다”며 “대회 초반에는 원하는 방향으로 잘 풀리지 않아 보는 입장에서 답답했을 수 있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래도 경기를 치르면서 팀원들의 합이 점점 맞아갔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이 생기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다윤은 ‘키아나’를 가지고 완벽한 숙련도를 보였고, 때로는 ‘뽀삐’를 택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이번 케스파컵에서 퍼스트 블러드 관여율 100%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그는 “게임을 하면서 퍼스트 블러드가 많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팀원들과 계속해 소통을 하면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모든 싸움에서 팀원들이 좋은 상황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좋은 기록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공을 팀원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끝내 아프리카는 결승전에서 샌드박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다윤은 케스파컵을 돌아보며 “나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5점 만점에 4점을 주겠다. 열매를 맺은 셈이다. 동기부여도 잘되고 팀적으로도 하나로 더 뭉치고,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결승전에서는 사실 잘하질 못했다. 3세트에서 실수가 유독 잦았다. 경기를 돌아보면서 ‘내가 아직 부족하고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방심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더 경기를 풀어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겸손한 답변을 내놨다.

LCK의 전초전인 케스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아프리카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팀의 중심 선수인 ‘기인’ 김기인을 비롯해 ‘플라이’ 송용준, ‘미스틱’ 진성준, ‘벤’ 남동현 등 베테랑들과 ‘드레드’ 이진혁, ‘올인’ 김태양 ‘젤리’ 손호경 등 젊은 유망주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다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사실 이번 우승이 엄청 기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맛 본 우승과는 느낌이라 달랐다. 또 오랜만의 우승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상대 팀들이 우리에 대해 분석을 자주하고, 견제도 할 것이다. 또 우승을 하면서 생각보다 역효과가 나고 있다. 케스파컵 전에는 우리가 절실하고 간절했는데, 우승을 하면서 약간 풀어진 느낌이 있다. 다시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아 분위기를 다 잡고 나사를 조이고 있는 중이다.”

이어 그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8등 정도다. 케스파컵을 우승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고 연습할 부분이 많다. 관계자 분들도 아직은 우리에게 높은 점수를 주진 않았다. 오히려 동기부여가 생기면서 더 열심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가 어느 팀이랑 경기를 해도 언제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리그 자체가 많이 평준화가 됐다. 경기력의 갭을 줄여나가야 순위를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 갭이 크다. 그래서 8위라는 평가를 내렸고, 우리가 그 만큼 갭을 줄여나가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역시 올 시즌에 대한 목표가 있을 터. 그는 크게 2가지로 나눠 답했다. 하나는 '완벽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증명'이었다.

그는 “우리가 그 동안 해왔던 게임들에서 실수를 찾으면 경기당 5개가 나왔다. 실수가 단 한 개도 없는 경기를 하는 것이 우리 팀의 목표다”라며 “또 하나는 사실 올해가 끝나기 전까지 말하지 않으려던 목표가 있다. ‘노페’ 정노철 코치님이 한화생명으로 가셨는데, 그 팀에게 한 판도 지지 않는 게 나의 목표다. 지난 서머 시즌에 내가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내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인 최대 목표다”라고 열망을 드러냈다.

[쿡터뷰] ‘스피릿’ 이다윤의 목표, ‘완벽함’과 ‘증명’

이다윤도 어느덧 선수 생활 8년차를 맞이했다. 자신과 같이 데뷔했던 선수들은 어느덧 은퇴를 하고 자취를 감췄다. 사실상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는 “올해 내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도 어느덧 리그에서 최고참급 선수가 됐다.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에 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모든 것이 다 갖춰졌다. 좋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함께 있다. 모든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 잘 유지해서 계속해 악셀을 밟는다면 롤드컵에 진출할 수 있고, 꿈에 그리던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롤드컵에서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이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에게 궁극적인 목표를 물어봤다. 남들이 바라는 돈과 명예가 아니었다. 그의 대답은 아프리카의 감독 ‘최연성’ 같은 사람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오래 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최연성 감독님 덕분이다. 지칠 때면 감독님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제로도 많이 배우고 있다. 선수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게 느껴진다”며 “성적을 내는 데 있어서 팀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감독님은 다르다. 운영 방식과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에 배울 점이 많다. 감독님은 선수 생활을 길게 하시고 정점에 계셨다. 또 코치로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셨다. 나 또한 감독님의 루트를 따라가고 밟아가고 싶다. 남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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