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사이드] 태연, ‘인투 디 언노운’

기사승인 2020-02-0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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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지난달 열린 제29회 서울가요대상에서 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의 음원 부문 대상 수상을 두고 여러 말들이 오간 걸로 기억한다. 시작 이래 줄곧 ‘단일 대상’을 고수해오던 서울가요대상이 올해 유력한 대상 후보자가 시상식에 불참하게 되자 갑자기 음원 부문 대상을 ‘급조’했다는 의심, 지난해 높은 음원 대상을 시상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과 대형 기획사간의 ‘관계’가 힘으로 작용했을 거란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사위원들의 속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태연이 이룬 성과가 단지 지난해 발표한 ‘사계’, ‘그대라는 시’, ‘불티’의 흥행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첫 솔로 음반을 냈던 2015년부터 태연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면서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어낼 만한 음악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대중가수의 당연한 책무처럼 보이지만 어떤 뮤지션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다. ‘음원 퀸’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생략해버린, 그러나 높게 평가받아 마땅한 성취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음악 안에서 수준 높은 역량을 지속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태연은 높은 신뢰를 주는 아티스트”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발표한 정규 2집 ‘퍼포즈’(Purpose)는 “그간 태연이 내놨던 음반들 중 가장 성숙한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팝 사운드로 무장한 1집 ‘마이 보이스’(My Voice)의 장점을 물려받되, 한층 복잡 미묘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기술적으로는 “편안한 톤과 농밀한 감정 표현, 너른 음역대가 태연의 장점”(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이다. 탁월한 해석력을 바탕으로 노래마다 보컬 운용을 달리하며 팝, 재즈, 록, 블루스 등 여러 장르를 유영한다. 

[딥사이드] 태연, ‘인투 디 언노운’‘퍼포즈’는 음악뿐만 아니라 태연 자신의 이야기로도 기능한다. 타이틀곡의 제목이 ‘불’이나 ‘불꽃’이 아닌 ‘불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직은 작은 불똥에 지나지 않는 불티가 마침내 불꽃으로 타오르기 위해서는 “내 안에 내가 많아 온 밤이 소란한” 와중에도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고, “눌러 덮으려 해봐도 꺼지지 않는” 강인함도 있어야 한다. ‘아이’(I)와 ‘날개’(Feel So Fine)를 통해 끊임없이 자립과 비상을 소망해오던 태연의 성장통이다. 덮어놓고 ‘희망’을 외치는 대신, 태연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자신을 들여다본 끝에 각성한다. 

‘퍼포즈’를 다시 꾸려 발매한 신보의 타이틀곡이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Dear Me)인 건 어쩌면 필연적이다. “길었던 어둠을 견딘 나”를 믿고 “또다시 밤이 와도 숨지 않”겠다는 가사는 여느 ‘성장 송’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퍼포즈’에서 쓰고 달고 짠 감정을 두루 경유해온 태연이 부르는 이 노래엔, 여느 성장 송과는 다른 궤적이 있다. 당신이 이 곡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그건 노래 자체의 아름다움보단 그 안에서 묻어나온 태연의 자취를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태연이 부른 영화 ‘겨울왕국2’의 OST 제목은 ‘인투 디 언노운’, 국내에선 ‘숨겨진 세상’으로 번역됐지만 직역하자면 ‘미지의 곳으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태연의 행보와 가장 잘 어울리기는 표현이기도 하다. 지난달 열린 태연의 콘서트 ‘언 신’(Unseen) 무대 장치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설령 내가 겪어온 변화들이 나를 달라지게 하더라도 그 또한 새로운 나”라고, 그러니 “나는 대체되는 것이 아닌, 확장하는 존재”이라고. 이웃집 소녀처럼 친숙하던 데뷔 초를 지나 우울함이나 시니컬함까지 끌어안으며 성장한 태연은 지금도 여전히 나아간다. 알려지지 않은, ‘나’라는 세상으로.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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