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휴원한 어린이집, 우리 애만 덩그러니…워킹맘이 죄인”

기사승인 2020-02-1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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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신종 코로나 때문에 휴원, 휴교하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맞벌이하는 집, 양가가 도움 못 주는 집은 어떻게 하나요? 정말 미치겠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가 잇따라 휴업하고 있다. 한순간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사라진 맞벌이 부모들의 고민이 깊다. 정부가 실효성 있는 돌봄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로 인해 휴업한 곳은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 모두 356곳이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135개교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서울 118개교, 경기도 43개교, 인천 35개교, 충남 5개교 순이다. 충북과 전남은 각각 1개교씩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 5일과 7일 두 차례 휴업 명령이 발표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중랑구, 성북구 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 42개교에 대해 지난 6일부터 오는 13일까지 휴업 명령을 내렸다. 이틀 뒤 송파구, 강남구, 영등포구, 양천구 32개 학교가 10일부터 오는 19일까지 휴업 명령 조치를 받았다.

한번에 신종 코로나 확진자 3명이 동시에 나온 경기도 시흥시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9일 시흥시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관내 모든 어린이집 465곳에 대해 10일부터 16일까지 휴원하도록 명령했다. 시흥교육지원청은 같은날 관내 30개 유치원에 대해 휴업조치를 결정했다. 

맞벌이를 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급한 대로 친척과 조부모, 지인을 수소문해 아이를 맡기는 상황이다. 서울 성북구에 살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한 30대 직장인은 “다행히 회사가 친언니가 사는 곳과 가까워서 하루는 친언니가 봐주기로 했다. 그 뒤에는 남편과 번갈아 하루씩 연차를 쓸 계획”이라면서 “이번주는 어떻게 버텨도 휴원이 장기화되면 그때는 정말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아이를 봐줄 친인척조차 마땅치 않은 가정은 근심이 깊어가고 있다. 아이 때문에 직장에 길게 연차를 내자니 회사에 눈치가 보인다는 설명이다. 일의 특성상 재택근무를 하거나 연차를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맞벌이 가정을 위한 대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등원이 불가피한 아동을 대상으로 휴업 기간에도 유치원 방과후 과정과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참여율이 저조한 편이다. 집 밖으로 나서면 어쩔 수 없이 아이가 바이러스 전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일단 크다. 

“코로나로 휴원한 어린이집, 우리 애만 덩그러니…워킹맘이 죄인”11일 찾은 송파구 한 유치원은 간간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외에는 조용했다. 유치원 관계자는 “19일까지 휴원이지만 돌봄 교실을 진행 중”이라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총 아동 수가 89명인데 돌봄 교실에 나온 아동 숫자는 10명 안팎이다. 대부분 맞벌이 가정 자녀들”이라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곳도 비슷하다.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시흥시에 위치한 A 사립유치원은 총 230명 중 50명이 등원했다. B유치원은 160명 중 30명이, C유치원은 140명 중 15명이 등원했다. C유치원 관계자는 “맞벌이 학부모들이 아이를 돌볼 여력이 없는데도 신종 코로나에 대한 걱정이 커서 등원을 꺼리는 것 같다”면서 “(이번 사태로) 몇몇 어머님들은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보내도 친구들이 없어 시무룩한 아이 뒷모습이 온종일 눈에 밟힌다며 죄책감을 토로하는 학부모도 있다. 자신을 시흥시에 거주하는 ‘워킹맘’이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지역 주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보냈다”면서 “등원하니 신발장에 신발이 거의 없어서 선생님께 물어보니 딱 맞벌이 가정 친구들만 왔다고 하더라. ‘엄마 일해야 한다’고 설득해 겨우 어린이집 보내고 나니 마음이 좋지 않다. 애 앞에서는 항상 죄인”이라고 말했다. 댓글에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딱 2명이 등원했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아무도 등원하지 않아 내일부터 친정엄마에게 맡길 예정이다”라는 공감이 잇따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유치원, 학교의 휴원·휴교시 맞벌이 부모에게 재택근무 등 근무 형태를 유연하게 해달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선례도 있다. 지난 2018년 8월 태풍 ‘솔릭’ 북상으로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 긴급 휴원 공문을 내고 서울, 인천 교육청이 학교 휴업을 결정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전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자녀 돌봄이 필요한 근로자들은 자유롭게 연차를 쓸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긴급 요청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 10일 성명서를 내 “정부는 사정이 있어 기관 보육을 희망하면 등원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있으나 불가피하게 자녀를 휴원 중인 기관에 보내야 하는 양육자들은 감염 우려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른 돌봄 공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는 전국 사업장에 양육 노동자의 자유로운 연차 사용을 권고하고, 유급휴가 사용이 가능하도록 권고조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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