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이길보라 감독 “베트남 민간인학살, 어떻게 기억할지 묻고 싶었죠”

‘전쟁과 참사, 재난이 계속되는 시대에 난 이것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기억할 것인가’

기사승인 2020-02-2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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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오는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감독 이길보라)은 무덤으로 뒤덮인 한 베트남 마을에 관한 이야기다. 평화로운 베트남 퐁니, 퐁넛 마을의 풍경과 따뜻하게 웃는 탄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있으면,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맞나 싶은 착각이 든다. 탄 아주머니와 마을 주민들이 1970년대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전쟁과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민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꾸 의문이 든다. 대체 이들에게 베트남전쟁과 한국 군인은 어떤 존재일까,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는 걸까.

출발점부터 달랐다. 최근 연남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길보라 감독은 베트남전쟁과 민간인학살 문제의 진실을 알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주목한 건 기억이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자신의 할아버지와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란 자신의 기억, 한국군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탄 아주머니의 기억과 한국 전쟁기념관에 남아있는 기억과 참전용사들의 기억은 모두 조금씩 달랐다. 감독은 5년에 걸쳐 베트남전쟁에 관한 각자의 기억을 기록하고 들여다봤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학살 이슈가 논의되고 탄 아주머니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에 맞춰 영화의 형식도 바뀌었다. 지금의 최종 완성본을 예상하지 못했던 감독은 자신이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과 담아야 했던 것, 담지 말아야 하는 걸 명확히 알고 있었다. 약 1시간 동안 영화에 대해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가 공개됐어요.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 “예상외로 10~20대 젊은 관객들이 많아서 흥미로웠어요. 처음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소재를 다룬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이미 꽤 많이 하지 않았어?’라고 했어요. 그들에겐 익숙한 이야기인 거죠. 하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관객들이 많았어요. 충격적이라고 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기억의 전쟁’을 처음 기획하게 된 순간과 계기가 궁금해요.

△ “여러 계기가 있었어요. 어릴 때 자신을 참전용사라고 호칭하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고엽제 후유증을 앓으셨고 베트남전쟁에서 받은 훈장과 표창장이 집에 있었죠. 전 그런 것들을 보면서 자랐고 2000년대 초반이 돼서야 민간인학살을 알게 됐어요. 할아버지를 통해서 알았던 베트남과 책을 통해 만난 베트남이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베트남에 가게 됐고 탄 아주머니를 만났어요. 아주머니가 따뜻한 밥 한술 뜨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전 가해국에서 온 사람이잖아요. 참전용사의 손녀이기도 하고요. 한국군 때문에 온 가족을 잃었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밥을 먹고 나니까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시작했고 끝내게 됐죠.”


- 영화 초반부에 베트남 장면과 한국 장면이 교차하는데 온도차가 컸어요. 베트남은 따뜻한 일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한국은 전쟁박물관의 모습만 나오더라고요.

△ “영화를 통해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 질문이 영화를 끌어가는 원동력이었고,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중요한 건 베트남에서 서로를 죽고 죽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50년이 지난 지금 그 일을 기억하고자 하는 태도를 같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열린 ‘시민 평화 법정’과 탄 아주머니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는 중학생들의 모습, 전쟁을 기억하는 한국 박물관의 태도, 관광객으로 구경하면서 기억하려고 하는 사람들 등 그런 것들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단순히 대립하고 충돌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몫이 중요하잖아요. 관객의 몫도 있어요.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살을 어떻게 기억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 영화에서 인물들과 전쟁을 바라보는 일정한 거리감과 시선도 인상적이었어요.

△ “저는 전쟁에 대한 온도차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베트남전쟁을 겪은 1세대가 있고 제 부모님과 고모가 2세대, 제가 3세대죠. 이 문제를 바라보는 2세대와 3세대의 태도는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고모는 베트남전쟁에 다녀온 할아버지를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세요.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하셨다고 하시고요. 3세대인 저는 접근하는 온도가 달랐다고 생각해요. 제작진이 20대 여성이라는 걸 듣고 어떤 이는 거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서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는 영화로 만들지 않았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전쟁의 핵심인물들을 넣어야 하지 않았냐고요. 제가 만들고 싶었던 영화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전쟁과 학살을 보는 저만의 태도, 거리감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 영화에 참전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잔잔하게 가던 영화가 그분들이 등장하는 순간 굉장한 긴장감을 주더라고요.

△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그분들을 악의 축으로 그리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사실 저도 제작 초반에는 그분들을 이해하지 못하겠고 무섭고 그랬어요. 카메라에 대고 욕을 하니까 무서워서 도망가기도 하고 카메라를 내려놓기도 했죠. 하지만 계속 찍다 보니까 이분들이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걸 알게 됐어. 집회 현장에 계속 나오는 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다른 집회에도 많이 동원되시더라고요. 이분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여기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하려는 거로 생각했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요. 그래서 영화에서 가해자로만 그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있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난 어떻게 찍었을까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고요.”


- 영화를 5년 동안 준비하면서 찍은 분량도 많았을 것 같아요. 결국 많은 편집을 거쳐 지금의 영화에 이르게 됐을 텐데, 그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 “편집하면서 영화의 방향을 잡아나갔던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참전군인의 인터뷰를 더 넣고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하셨어요. 전 그건 다음 영화가 해야 하는 몫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게 ‘기억의 전쟁’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죠. 누군가 이 영화의 후속 작업을 하게 된다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어떻게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 더 깊게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예술 작업은 소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이 시대에서 해야 하는 몫은 소통이라고 생각했어요.”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대체 어떻게 끝날까 생각하면서 봤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니 편안해지고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도 들더라고요.

△ “가편집부터 여러 단계의 편집 과정을 거쳤지만, 항상 엔딩 장면은 그거였거든요. 제 탄 아주머니에게 정말 감동한 지점이었거든요. 아주머니는 평생 고아로 살았고 죽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살아남은 건 죽은 이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라고 얘기하셨죠. 결국 탄 아주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몫을 해내면서 살아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하면서 살아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으로 넣었어요. 너희가 아무리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난 죽은 자들을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이란 거죠.”


[쿠키인터뷰] 이길보라 감독 “베트남 민간인학살, 어떻게 기억할지 묻고 싶었죠”

- 이길보라 감독님이 영화 '기억의 전쟁'을 통과하면서 베트남전쟁에 관한 생각이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 “‘전쟁과 참사, 재난이 계속 일어나는 시대에 난 이것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기억할 것인가’가 ‘기억의 전쟁’을 시작했던 20대의 제 고민이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배우고 싶었어요. 전 탄 아주머니 태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응우옌 티 탄은 계속 청원서를 내고 대한민국 정부가 답변할 수 없다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도 사과받아야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잖아요. 탄 아주머니가 한국에 왔을 때 위안부 피해자 분들과 세월호 참소 유가족 분들도 만났어요. 사실 전 그때 탄 아주머니는 절대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로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크게 공감하시더라고요. 광화문 분향소에 걸린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읽어보시는 거예요. 제게도 세월호 참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난 광화문을 지나다니면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들여다보고 이름을 읽어본 적 있었나’ 질문하게 되더라고요.”


- 영화를 처음 기획한 당시와 지금의 완성본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요.

△ “탄 아주머니의 캐릭터가 크게 달라진 게 생각지 못한 지점이었어요. 처음엔 제작 기간을 2~3년 정도로 잡고 베트남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여주자고 기획했어요. 2018년 탄 아주머니의 두 번째 한국 방문 때는 기획했던 영화 촬영이 모두 끝난 상태였죠. 제가 매년 베트남을 방문할 때마다 탄 아주머니의 표정이 바뀌는 걸 봤어요. 처음엔 수동적으로 증언해달라고 하면 해주는 사람이었는데, 나중엔 한국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재판을 받겠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그 표정을 보고 목소리 톤을 듣고 인물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부회의를 했어요. 처음엔 세 명의 인물이 대등하게 나오는 영화였다면, 지금은 탄 아주머니 가 핵심 주인공이 됐죠. 만약 그녀가 베트남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 모습으로 바뀌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국에 오셔서 한국 상황이 어떤지 알게 됐고 ‘기억의 전쟁’을 보셨죠. 지방에 갈 때 마다 참전군인들의 반대 집회가 열리는 걸 봤어요. 그 모습들이 살아남은 자의 몫을 해야겠다는 계기를 준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시면 또 달라질 것 같아요. 그 모습이 개인적으로도 많이 궁금해요.”


- 개봉하면 영화제 때보다 훨씬 많은 일반 관객들이 ‘기억의 전쟁’을 만나게 될 거예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 “영화가 잘 돼서 훨씬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시고 자신의 시선에서 베트남전쟁과 민간인학살은 무엇이었는지 얘기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저희 고모가 영화를 보고 나서 베트남에서 가족과 엄마를 잃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왔다는 걸 알게 되셨어요. 고모가 베트남전쟁에 갖고 있던 기억은 할아버지가 가져온 달콤쌉싸름한 초콜릿과 미제 물건들, 일본 라디오가 전부였는데 말이죠. 전 그렇게 각자에게 베트남전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위치에서 얘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민간인학살에 대한 것들이 새 국면을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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