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박은빈으로 할 수 없던 것 이세영으로 할 때, 행복하더라고요”

기사승인 2020-02-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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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국내 프로야구단 가운데 유일한 여성 운영팀장, 동시에 최연소 운영팀장. 배우 박은빈이 연기한 SBS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운영팀장을 설명하는 첫 문장에는 성격과 캐릭터보다 직함이 먼저 나온다. 박은빈은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을 드러내기보다 16회 내내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고 늘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이세영 팀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드림즈가 겪는 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때로는 백승수 단장(남궁민)과 부딪히고 화해하면서 고민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여러모로 신뢰와 응원을 받기에 충분했다. 사실상 시청자들을 ‘스토브리그’로 초대하고 안내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25일 오전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은빈은 캐릭터를 연구하며 적었다는 두꺼운 노트 한권을 앞에 두고 기자들을 맞았다. 이세영 팀장보다는 한 단계 낮은 톤의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단어를 하나씩 골라가며 최대한 정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모습은 극 중 역할과 닮았다.

박은빈은 이세연의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 타이틀에 무게감을 느꼈다. 유능하고 익숙하고 카리스마 있는 팀장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했다. 실제 대본에 적혀 있는 캐릭터도 좋았지만 더 좋은 캐릭터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그에게 ‘의무감’이었다. 혹시 자신 때문에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지 못하면 자괴감이 들까 두렵기도 했다고 했다. 평소에 관심이 많지 않던 야구는 이세영 팀장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야구 팬들의 동영상을 많이 봤어요. 팬들의 리액션 영상을 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됐죠. 세영이는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큰 인물이거든요. 드림즈의 열정적인 진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 처음에 드림즈는 연달아 꼴찌를 하고 프런트도 정체돼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본인의 커리어에 진심일 수 있는 캐릭터의 원동력이 뭘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간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이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영감을 줬던 것 같아요. 본인의 팀이 잘하든 못하든 항상 응원하고, 분노하다가 또 환호하는 모습이요. 여러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야구장에 와서 즐겁게 관람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여겨지더라고요. 초반엔 야구의 매력이 뭘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박은빈은 ‘스토브리그’에 출연하기 전 잠깐의 공백 기간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2018년 10월 종영한 KBS2 ‘오늘의 탐정’ 이후 1년 2개월 만에 복귀한 것. 그는 쉬는 기간 동안 배우로서의 부담감을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 선택도 더 가볍게 생각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시작이 ‘스토브리그’였다.

“‘스토브리그’는 그동안 읽었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금방 읽혔어요. 사실 하루 만에 결정을 내린 작품이죠. 이전에는 작품을 대할 때 어렵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돌아보면 그 선택들이 최선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공백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이 가벼워지려고 노력했어요. 가볍게 생각하려고 했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죠. 그때 만난 작품이 ‘스토브리그’예요. 단숨에 읽히는 대본이어서 유례없이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해요. 어떤 작품을 만나는 게 맞는 것인지는 지나고 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 과정도 의미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어떤 의미라도 남길 수 있었으면 다행이니까 최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스토브리그’ 7회의 엔딩 장면은 방송 이후에도 여러모로 반복해서 회자됐다. 이세영 팀장이 예의 없는 태도로 연봉협상에 임하는 선수에게 유리컵을 던지며 “선은 니가 넘었어”라고 소리치는 장면이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단 백승수 단장의 부하직원으로 일하며 주저하고 고민하던 이세영 팀장의 시원한 외침에 많은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박은빈은 “요즘 그렇게 소리질러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로 데시벨로 질러야 할지 고민했다”며 웃었다. 이세영 팀장은 박은빈에게도 특별한 캐릭터였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이세영의 모습이 스스로 잘 맞는다는 것을 연기하면서 느끼기도 했다.

[쿠키인터뷰] “박은빈으로 할 수 없던 것 이세영으로 할 때, 행복하더라고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세영 팀장의 강인함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직언을 백승수 단장에게 당당히 할 수 있는 건, 이세영 팀장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만큼 실력에 자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주체적인 인물을 연기할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더라고요. 연기할 때 정말 신나기도 했거든요. 박은빈의 인생에서 할 수 없었던 걸 이세영 캐릭터로 할 때 행복하더라고요. 시청자 분들이 느끼신 것처럼 저도 희열을 느끼면서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세영은 인터뷰 시간 내내 함께한 자신의 노트를 ‘캐릭터 노트’라고 칭했다. 캐릭터 설정부터 촬영을 하면서, 혹은 방송 이후 예상치 못했던 반응을 보며 떠오른 단상들을 적어둔다고 했다. 벌써 두 권 째인 그의 노트는 군데군데 스티커로 표시해둔 페이지가 벌써 다음 권으로 넘어갈 느낌처럼 보였다. 박은빈은 배우로서 늘 새로운 모습을 찾고자 한다고 했다.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기질이 비슷한 부분이 있기도 해요. 애초에 제가 갖고 있는 밝은 이미지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목소리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진 억양도 있을 거예요. 시청자 분들이 비슷하게 느끼실 수 있다고 저 역시 제대로 인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최대한 어떤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역할을 하든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드리기 위해 앞으로도 연기나 역할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평면적인 부분도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전념할 계획입니다.”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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