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초봄의 보약 ‘고로쇠 수액’

입력 2020-03-03 13: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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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초봄의 보약  ‘고로쇠 수액’달콤한 향과 맛이 일품인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의 퀘벡 지역에서​ 전 세계소비량의 70% 가까이 생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메이플 시럽을 차나 커피에 설탕 대용으로 넣거나 팬케이크나 와플에 뿌려서 먹는 등 다양하게 이용한다. 수액의 당분 함량이 높은 설탕 단풍나무, 검은 단풍나무, 붉은 단풍나무에서 모은 수액을 졸여서 진하게 만든 시럽이 메이플 시럽이다.

시럽을 만들기 전(前)단계의 자연상태에서 채취된 수액은 우리나라에서는 고로쇠 수액과 닮은 점이 많다. 하지만 맛과 향, 당도는 지역마다 달라서 고로쇠 수액을 졸여도 캐나다의 메이플 시럽 맛을 내긴 어렵다. 단풍나무과의 낙엽 교목인 고로쇠나무(Acer pictum)의 수액이다.

고로쇠나무는 고로실나무 · 오각풍 · 수색수 · 색목이라 불린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으로 지금은 조림도 많이 한다. 고로쇠나무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팔만대장경판을 조판할 때도 쓰였던 나무 중 하나다. 재질이 단단하고 날씨에 따라 수축, 팽창하는 치수의 변화가 적고, 재질이 균일한 장점 덕에 악기, 운동기구의 제작에도 널리 이용된다.

고로쇠나무에 상처를 내 흘러내린 수액을 풍당(楓糖)이라고 해서 관절염, 위장병, 폐병, 신경통 치료에 이용한다. 한약명이 지금축(地錦槭)인 고로쇠 나무의 껍질은 차갑고 습한 기운이나, 타박으로 인한 두통을 치료하는 효능을 지닌다.

《中華本草》
功能主治祛風除濕, 活血止痛。主偏正頭痛;風寒濕痹;跌打瘀痛;濕疹;疥癬

고로쇠라는 이름은 뼈에 이로운 나무 또는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樹, 骨利水)’에서 유래했다. 왕건(王建)의 스승인 도선(道詵, 827~898)이 전남 백운산에서 오랜 좌선을 마치고 일어서다가 뻣뻣해진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아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았는데 그 가지가 부러지면서 수액이 나왔다. 그 수액을 마셨더니 무릎이 펴지고 지친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이 느껴져 몸의 근원을 이루는 뼈에 좋은 나무 또는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樹, 骨利水)'로 불린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초봄의 보약  ‘고로쇠 수액’고로쇠 수액에는 칼슘(Ca), 칼륨(K), 망간(Mn), 마그네슘(Mg), 철(Fe), 아연(Zn) 등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과 아미노산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특히 식수에 비해 30배의 마그네슘과 40배의 칼슘을 함유하고 있다. 또한, 맛인 자당(Sucrose) 성분이 1리터에 16.4g 가량 포함돼 은은하고도 청량한 나무 기운을 담은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숙취 해소와 스포츠 이온 음료를 대체하는 생체수(Bio-water)로 새롭게 주목받으며 다양한 의료건강식품 산업에서의 이용도 기대되고 있다.

고로쇠 수액은 이른 봄인 경칩 전후에 채취한다. 채취 시기는 보통 남쪽 지방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다. 고로쇠는 고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곳에서 채취할수록 단맛이 강하다. 아침저녁 기온이 영하 3~5℃ 이하로 내려가고 낮 기온은 영상 3~5℃ 이상으로 올라가는 시기가 가장 양호한 채취 환경이다.

고로쇠나무에 저장된 성분들이 낮과 밤의 온도 차가 15도 정도인 초봄 시기에 나무 속에 공간이 생겨 뿌리로부터 미네랄을 함유한 수액이 올라오는 것을 채취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고로쇠나무를 심어 가꾼 인공림이 자생적으로 자라는 경우보다 생장이 빨라서 평균 10년 일찍 수액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하여 임업가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이 되는 수종이다.

산림청은 국유림을 활용한 산촌주민들의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정책의 하나로 산불예방 등의 산림 보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정한 자격을 지닌 산촌주민들에게 고로쇠 수액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무상 양여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깨끗한 공기와 그 외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득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숲이 국토의 63%인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행운 중 하나이다.

산촌 지역 주민들의 소득향상 및 산촌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숲이 존재하는 한 계속 채취가 가능하며, 건강에도 좋은 고로쇠 수액은 지금 이 시기에 즐길 수 있는 봄의 맛이 아닐 수 없다. 푸른 숲과 산림이 제공하는 행복한 느낌을 가까운 사람들과 고로쇠 수액으로 나눠보기 좋은 초봄이다. 

박용준(묵림한의원 원장/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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