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와 검은 돈

입력 2020-03-18 08: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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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는 미국의 여성추리작가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원작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The Talented Mr. Ripley, 1955)를 각색, 영화화한 1960년 프랑스작품이다. 애잔한 선율의 ‘로망스’로 유명한 ‘금지된 장난’의 르네 클레망 감독의 작품으로,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영화 중 최고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과 에머랄드 빛 지중해를 배경으로, 현란한 색채와 리노 로타의 감미로운 선율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겨주지만, 영화는 상반된 내용을 보여준다. 돈과 사랑을 한꺼번에 움켜쥐려는 야심에 불타는 가난한 청년의 부질없는 욕망과 그 좌절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돈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한편, 가진 자의 횡포를 의미한다. 결국,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신분상승의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한 젊은이가 끝내 살인하게 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 톰 리플리(알랑 드롱)는 재벌 아들인 중학교 동창인 필립(모리스 로네)을 죽이고, 자신의 뛰어난 재능(계산능력, 모사능력, 변장술)을 이용하여 신분증명서를 위조함은 물론, 완벽하게 필립으로 변신하여 그의 인생을 대신한다. 그러나 필립의 친구인 프레디(빌 키어스)에 의해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자 그도 살해한다. 필립을 잃고 슬픔에 빠진 마르쥬(마리 라포네)의 사랑도 얻는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없는 법. 미국에서 필립의 아버지가 마르쥬를 만나러 오게 되고, 그와 마르쥬는 요트를 팔기 위해 배를 육지로 끌어낸 순간 스큐류에 엉킨 긴 밧줄에 필립의 시체가 끌려 올라온다. 바닷가에서 최고급 술을 마시며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던 톰을 찾아온 형사들이 찻집 여주인을 시켜 전화가 온 것처럼 톰을 부르자 추호의 불안감도 없는 행복한 얼굴로 전화가 있는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그의 뒤로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색의 지중해가 한가롭게 일렁이고 있었다”

[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와 검은 돈모택동은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지만,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것이 돈이다. 그렇다면 모든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돈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우상이다. 사회정의도 필요 없고 신의란 것도 하나의 장식품일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돈이라고 해서 다 같은 돈이 아니다.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값진 돈이 있는가 하면 탐욕, 폭력, 범죄의 진한 냄새가 배어있는 검은 돈도 있다. 즉, 자신이 힘들여 노력하여 벌지 않은 돈을 ‘검은 돈’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 나라의 부패의 척도이다. 이 ‘검은 돈’의 출처를 감추고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돈세탁’이 행해진다. 조세 피난처는 마약거래나 매춘 등 국제적 범죄로 형성된 자금이 돈세탁 과정을 거쳐 양지로 나오는 것을 방조함으로써, 국제범죄의 창궐은 물론 뇌물이나 부패한 정치자금의 통로로 이용된다.

'사흘 굶어 군자(君子)없다'는 말이 있다. 과욕으로 죄를 저지르는 경우보다도, 빈곤이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배고픈 호랑이가 원님을 알아보랴'라는 말처럼 살인까지도 서슴치 않게 하는 것이 빈곤이다. 그렇다고 해서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리플리(1999)’에서도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이기보다는 뛰어난 다른 누군가인 척하는 게 낫다'는 빗나간 생각이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한다.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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