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반전 과거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반전 과거

기사승인 2020-03-2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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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당신은 누구시기에 내 마음을 이리 흔드시나요.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쌓은 배우들이 브라운관으로 넘어오고 있다.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출신지를 짚어본다.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반전 과거■ 이규형
현재: tvN ‘하이바이마마’ 조강화 

“하루도…못 살겠어요, 장모님.” 장인·장모 앞에 꿇어 앉은 조강화가 어렵게 입을 뗀다. 말도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려대다가 처음 털어놓은 말이다.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질 때마다 시청자의 마음도 쿵 내려앉는다. 강화는 5년 전 아내 차유리(김태희)를 잃었다. 유리가 남겨놓은 딸 서우(서우진)만을 보며 유령처럼 살았다. 같은 병원에서 간호사를 일하던 오민정(고보결)과 재혼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려는데, 이럴수가. 죽은 유리가 살아 돌아왔다. 유리는 자신의 존재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강화는 속수무책으로 속만 타들어간다. 강화의 눈빛만 봐도 슬픔이 그려지고, 뒷모습만으로도 가슴이 휑해진다. 분명 유리의 행복을 빌며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모두의 처지가 안타까워 발을 구르게 된다. 그러니 그냥, 넷이 같이 살아요. 

과거: 뮤지컬 ‘팬레터’ 김해진
이규형의 얼굴에는 시(時)가 있다. 검사들의 스폰서를 죽이고 그들에게 성 상납했던 여성을 해치거나(tvN ‘비밀의 숲’), 마약을 하다 잡혀 옥살이를 할 때(tvN ‘슬기로운 감빵생활’)마저도, 어쩐지 저 사람에게는 남들은 모를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만드는 서글픔이 서려 있다. 이규형은 2001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단역으로 연기계에 입문해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연기력을 다졌다.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와 우수 어린 눈빛으로 뮤지컬 ‘빨래’, ‘여신님이 보고계셔’, ‘사의 찬미’ ‘비스티보이즈’ 등 대학로 인기 작품들을 두루 섭렵했다. 그 가운데서도 이규형의 ‘사연 있는 듯한 얼굴’이 빛을 발한 작품은 단연 ‘팬레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작품에서 소설가 김유정을 모티브로 한 김해진을 세 번이나 연기했다. 열정적이고 순수하지만 연약한, 게다가 도회적이까지 한 김해진의 매력은 이규형이 머금은 서정성과 어우러져 뭇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반전 과거■ 전미도
현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채송화
율제병원 신경외과의 유일한 여자 교수. 채송화는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유난스러운 남사친 4인방을 한 방에 제압하는 카리스마. 환자에겐 친절을 후배에겐 가르침을 베푸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교수. 수술, 강의, 학회, 후배 지도, 주말엔 등산과 캠핑도 하는데 출근을 늦는 법이 없어 ‘귀신’이라고 불리는 자. 율제병원의 슈바이처! 엄마 친구 딸! 유일한 약점은 심각한 음치에 박치라는 건데, 미간을 찌푸린 심각한 표정으로 ‘론리 나잇’(Lonely Night)을 외치다가 멋쩍은 듯 주위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합주 후에 기타 피크를 내동댕이 친 김준완(정경호)에게 이 지면을 빌려 한 마디 하고 싶다. 왜 우리 송화 기를 죽이고 그래욧!

과거: 뮤지컬 ‘스위니토드’ 러빗 부인
2006년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로 데뷔한 전미도는 15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무대 연기에 전념하며 수많은 연극·뮤지컬 팬들의 ‘으뜸이’가 됐다. 연기의 폭도 무척 넓어, 사랑에 눈을 뜬 구형 로봇 클레어(‘어쩌면 해피엔딩’), 약혼자가 있지만 다른 남자에게 끌리는 괴로워하던 롯데(‘베르테르’), 격변의 시기 러시아에서 강인한 의지로 삶을 헤쳐나가는 라라(‘닥터 지바고’) 등 다양한 인물을 표현해왔다. 2017년 국내에서 재연된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는 복수를 꿈꾸는 살인마 벤자민 토드의 조력자 러빗 부인을 연기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인육 파이를 만드는 ‘생계형 공범자’라고나 할까.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호들갑스러움이 매력인데, 전미도는 능청스러운 수다 만으로도 증오와 광기에 찬 벤자민 토드와 맞먹는 존재감을 내며 작품을 휘어잡았다. 이 사랑스러운 푼수에게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TV 드라마 속 배우들의 반전 과거■ 지현준
현재: SBS ‘하이에나’ 하찬호

세상 어딘가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 속 재벌가 자제를 망나니로 키워내는 사관학교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닐까. ‘하이에나’에서 이슘 그룹의 후계자이자 이슘 홀딩스 대표인 하찬호는 막나가는 재벌 3세의 전형이다. 그는 내연녀가 없으면 제정신으로 살지 못한다. 헤어지자는 말에 여자를 감금·협박하고, 그가 떠나자 정신이 반쯤 나가 술과 약에 찌들어 산다. 심지어 자신이 싼 똥, 아니 자신이 저지른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변호사 정금자(김혜수)에게도 툭하면 폭언에 갑질을 일삼는다. 하지만 과연 정금자가 떠나면 손해인 건 하찬호일까 정금자일까? 어쨌든, 자신은 서민들과는 다르다는 선민의식과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다 해드렸잖아요. 나도 내가 원하는 거 하나는 가질 수 있잖아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자기연민까지 갖춘 이 남자. ‘하찬호’라는 이름이 ‘하찮아’와 비슷하게 발음되는 건 과연 우연일까.

과거: 연극 ‘시련’ 존 프락터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전직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을 죽인 사내, 맞다. 선이 굵은 외모와 낮은 목소리. 지현준의 첫 인상은 ‘강렬하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동아방송대를 졸업한 뒤 방송PD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이끌려 무대에 올랐다. ‘햄릿’ 같은 고전부터 음악·연극·무용을 뒤섞은 실험극 ‘클럽 살로메’나 1인 35역을 맡은 모노드라마 ‘나는 나의 아내다’까지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특히 그의 연기는 비극성을 극대화한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데, 2015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시련’도 그중 하나다. 그가 연기한 존 프락터는 마녀사냥의 피해자로, 한때 도덕적인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정의를 향하는 인물이다. 신체적·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자신 안의 고결함을 지키고자 하는 존 프락터의 고뇌는 지현준의 진중하고 성직자 같은 면모를 만나 생동감을 얻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tvN,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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