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티타임으로의 초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하여

입력 2020-03-24 07:39:46
- + 인쇄

[이정화 티타임으로의 초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하여프로이드는 분실이나 망각은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마음속에서부터 원하지 않아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을 실제로 잊거나 잃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내가 프로이드의 책 ‘꿈의 해석’을 읽은 때는 겨우 중학시절이었지만, 난 그 이론에 충분히 공감을 하였다. 그가 예로 들은 것처럼, 나도 새 만년필을 선물 받고 헌 만년필을 부담스러워한 적이 있었다. 쓰던 물건에 의미를 만들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헌 만년필을 놓아둔 채 차마 새것을 쓰진 못했다. 그러나 새것이 생긴 뒤, 그때까진 잘만 쓰던 만년필의 펜촉을 공연히 눌러쓰며 잉크가 두껍게 나온다고 툴툴댔었다. 전에 없던 불만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것도 간직하고 기억했다. 대부분의 여학생이 그랬듯이 책상서랍 속엔 아끼는 학용품과 지난날의 편지, 사진에 마른 단풍잎들도 보관했다. 머릿속엔 친구의 전화번호는 물론, 언제 누가 나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그 때 표정은 어땠는지, 소설이나 영화의 아름다운 구절까지 모조리 기억했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중요한 뭔가를 놓쳤고, 그래서 그 때에 나는 정말 의아했다. ‘진심으로 잃거나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사라지는 이유’에 관해서였다. 아끼던 물건이 없어진 것과 단짝이라 믿었던 친구가 멀어진 까닭 같은 것이…. 

그러나 프로이드는 그것에 관해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아 나는 프로이드를 외면하고 결국 이유도 모른 채, 세월만큼 많은 것을 거듭 잃고 잊으며 살아왔다. 


요즘 세계는 코로나19로 비상사태이다. 재난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더니 정말로 모두가 많은 것을 잃고 있다. 격리와 폐쇄,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을 잃게 만들고 경제를 흔들었다. 누구도 결코 바라지 않던 일이고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도 못했다. 이유를 찾는다 한들,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진 시간이 필요하고 여파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무서운 바이러스로 이웃이 죽어갈 때, 누구 탓만 하거나 거짓소문으로 불안만 실어 나르는 것은 우리에게 바이러스보다 더욱 치명적이다. 돌림병은 결국엔 지나가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고 분노와 분열만이 지병처럼 오래 남을까 걱정이다. 

매번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 잃는 것이 있었고, 그 상처에 한 번도 무심해지거나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그때마다 통감했다. ‘결국은 지나가고 다시 채우리라.’는 생각이었다. 너무 뻔한 소리지만, 바로 그렇게 뻔해서 극히 당연한 결과를 가져올 생각들. 

모두가 피한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들, 서로 마스크를 사겠다고 다투는 때도 그것을 기부하는 사람들, 위기 속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선행과 미담들을 들으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 시간을 의연하게 잘 견디면 우린 좀 더 성숙한 사회와 위생관념이 투철해져 건강한 환경 속에 살게 될 테고, 늘 그날이 그날 같던 일상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새롭게 맛보며 감사할 것이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상상, 해피바이러스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정화(주부 / 작가)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