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7번가의 욕망(On Seventh Avenue, 1996)’과 공금횡령

입력 2020-03-25 10: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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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도라고 말해지는 뉴욕에서 7번가는 패션의 거리이며, 세계적인 패션의 중심지다.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패션쇼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기간을 ‘패션 위크(Fashion Week)’라 하는데, 세계 4대 패션 위크는 뉴욕․런던․밀라노․파리이다. 패션의 거리라 하면, 우리는 늘씬한 슈퍼모델과 그들의 화려한 의상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그 화려함 속에 감춰져있는 폭력, 마약 등의 범죄와 기업의 생존을 위한 밀약을 보여준 영화가 바로 ‘7번가의 욕망(On Seventh Avenue, 1996)’이다.

이 영화는 한 패션회사가 공금횡령으로 부도의 위기를 맞게 되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이 만든 옷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디자인 전문가인 창업주의 딸과 뛰어난 마케팅능력을 지닌 고리대금업자의 협약, 그리고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지만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일을 해준 종업원, 또한 회사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오랫동안 유지해온 회사이름을 바꾸는 추진력에 의해 회사가 다시 재기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기업이 망하게 되는 이유는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부실 탓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기업 내부의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말이 만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기업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들어보면, 공금횡령, 외화도피, 재산 보유․은닉, 임원보수 인상, 외유 등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실 100원을 메우려면 수백 원을 새로 벌어야 한다. 앞에서 벌고 뒤로 새는 기업은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망하는 기업 중 약 30%는 임직원 비리와 부정 때문이라고 한다.

[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7번가의 욕망(On Seventh Avenue, 1996)’과 공금횡령이 영화에서도 기업이 부도 위기에 빠지는 가장 큰 요인으로 공금횡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부도란, 기업의 채무변제능력이 지속적 결여되어 채무이행이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재무적으로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자산이 부채보다 작아서 기업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공금(公金)이란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私用) 돈이 아니라, ‘공적인 돈’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돈을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는데 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결국에는 그 부정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부정을 막기 위해 아무리 좋은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부정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는 잘못된 의식과 관행, 사회에 만연한 도덕불감증을 깨는 것이 선결과제다.

비록 실수로 죄를 졌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1862~1910)의 경우를 살펴보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조용래, ‘한마당-크리스마스 선물’, 국민일보, 2001.12.24. 7면을 참조하여 수정함.) 오 헨리는 1891년에 오스틴의 은행에 취직했으나 3년 뒤 공금횡령으로 쫓겨난 후, 2년 뒤에는 검찰의 수배를 받아 남미의 온두라스 등으로 도망을 다녔다. 그러다 1898년 아내의 병세가 위독하자 돌아와 자수하여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감옥에서 쓴 감동적인 단편소설 덕분에 형기는 2년이나 감형되었다. 아내가 병사한 후 처가에 맡겨진 어린 딸 마가렛에게 보낸 마음의 선물이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크리스마스의 고전으로 지금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공평한 사회다.

정동운(전 대전과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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