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원앙의 숲

입력 2020-03-31 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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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원앙의 숲예전에, 내가 받은 결혼선물 중에는 옻칠명장이 만든 한 쌍의 원앙 실패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실패에 청실홍실을 걸어 잘 간직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언니와 원앙실패를 나누어가졌다. 

언니도, 나도, 걸핏하면 부부가 떨어져 살자 애를 태우던 어머니가 하루는 내 반짇고리 속의 원앙 한 마리를 발견하셨다. 다른 하나는 언니에게 있다는 말에 ‘이래서 딸들마다 공방살이 꼈나보다’며 얼른 짝을 맞춰놓으라고 혀를 차셨다.

원앙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금슬의 대명사였다. 사람들은 원앙의 이름과 모양을 딴 예식장이나 선물들 속에서 행복한 결혼을 약속하고 축복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원앙은 여러 번 짝을 갈아치운다고 한다. 한 마리 암컷원앙 주위엔 열 마리 정도의 수컷이 맴돌고, 그 중 하나와 한 철을 보낸 암컷은 새로운 교배기가 되면 가차 없이 새서방을 택한다고 한다. 결국 사람들은 매번 꿀 같은 신혼의 원앙을 보며 그 다정함을 부러워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께 원앙의 실태를 일러바친 뒤, 곧 후회를 했다. 내게 원앙은 단지 예쁜 실패일 뿐이지만 어머니는 정말로 그것에 딸의 행복을 빌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원앙에 대한 배신감에 어머니가 속상하셨을까, 어머니의 사랑까지 무색하게 한 걸까, 마음 쓰였다. 세상을 살아가며 잘못 아는 것이 원앙뿐이 아닐 테니, 나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 진실까지의 거리에 더욱 씁쓸했다.

요즘은 믿었던 것들이 많이 흔들린다. 

진실과 사실, 그 두 단어는 오래도록 비슷한 말이었다. 아직도 내 마음을 고백하거나, 내 사정을 이해받는데 그 말 밖에 달리 나를 간곡히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흡사한 두 낱말은 서로를 자주 배반한다. ‘사실’은 실제로 발생한 일이나 현재의 상황만 보여주어 그 속의 의도와 맹세, 갈등과 혼란 같은 마음의 ‘진실’은 곧잘 놓치기 때문이다. 또 마음은 쉽게 보이지도 보일 수도 없으니 사실과 진실사이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요즘은 인터넷기사나 문자들을 통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퍼진다. 무엇이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오늘 옳다는 것이 내일도 그럴지 확신할 수 없는데도, 쉬지 않고 오르내리는 소문들을 보면 피곤해진다. 그야말로 수천마리의 원앙이 눈앞에서 훠이훠이 날고 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심한 근시안이었다. 가까운 것만 겨우 보았으나 워낙 눈이 어두워 그마저 제대로 보는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난시와 노안까지 생겼으니 사방이 전부 흐리다. 답답하지만 전처럼 애를 태우진 않는다. 다행히 세상 대부분이,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보기위해선 눈앞의 것 외에도 그 세월 속, 마음의 흐름들을 이해해야 한다. 지도를 따라가듯, 지난한 세월 속에 흐르던 그 존재의 무수한 추억과 상처, 마음의 흔적들을 거슬러 오르고 끌어안아야한다. 희다하여 그 속의 티를 보지 않거나 검다하여 그 깊이를 피해 돌아선다면 사실과 진실의 거리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원앙에 조각된 것은 원앙의 일생이나 명장의 손길이 아닌 누군가의 축복이고 어머니의 기도였다. 진실은 늘 그렇게 마음에 있고 시간과 함께 더 빛을 발한다. 뜬금없이 그 옛날의 원앙실패가 생각난 밤. 딱 지금의 내 나이셨을, 그 시절의 건강한 엄마가 보고 싶다.

이정화(주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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