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의 명클리닉] 대한민국 시력교정술의 전범,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

기사승인 2020-05-08 09: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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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부터 대한민국 시력교정사의 산증인, 최근 연평균 3000여 건씩 노안/백내장 수술도

#[스페셜 인터뷰: 글로벌 명의 명클리닉] 압구정동 아이러브안과 박영순 대표원장

#5분 만에 시력교정수술 끝내는 3세대 스마일 라식도 개시, 원스톱 눈 수술 완전체 구축

[쿠키뉴스] 이기수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근시 유병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각종 시력교정 수술을 받는 이가 해마다 20만 명 이상에 이른다. 라식과 라섹 등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뿐 아니라 인공 렌즈를 눈 안에 삽입하는 방법으로 시력회복을 시도하는 이들이 계속 늘고 있다.

믈론 누구나 다 시력교정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함부로 수술을 받았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시력이 안 좋다는 이유로 시력교정수술을 원하는 이들 중 약 10%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박영순(사진) 아이러브안과 대표원장은 26일 “눈이 나쁘다고 모두 시력교정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각막의 두께나 동공 크기, 안질환 여부 등 눈 상태에 따라 최적의 교정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시력이 좋지 않아 교정수술을 바란다면 먼저 자신의 눈 상태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수술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안과계의 퍼스트 펭귄’으로 통한다. 1989년 엑시머 레이저를 국내에 선도적으로 도입, 최소절개 레이저 시력교정수술 시대를 개척해온 업적 때문이다. 2005년, 국내 최초로 국제노안연구소를 설립, 노안과 백내장을 동시에 바로잡는 수술법도 발전시켰다. 최근 10년간 노안, 백내장 수술을 연평균 3000여 건씩 누구보다 많이 집도하게 된 배경이다.

박 원장은 사회공헌 및 봉사활동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해마다 2회 이상 몽골,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로 의료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 원장은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 환자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안과의사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눈이 침침하거나 잘 안 보이는 문제를 고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안 좋은 이들의 아픔도 함께 하며 보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박 원장의 도움말로 최근 30여 년간 시력교정술이 얼마나,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아봤다.

-수술로 시력교정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70년대 옛 소련의 스바토슬라프 표도로프 박사가 개발한 RK수술(방사상각막절개술)이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수술 후 부작용이 많았고, 정확도가 낮아 교정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해 시장에서 곧 퇴출됐다.

본격적인 시력교정수술 시대가 열린 것은 엑시머레이저 각막절제술(PRK)이 등장한 19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레이저로 각막 세포를 정확하게 깎아낸다는 것은 매우 혁신적이지만, 그만큼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공업용 레이저를 어떻게 눈에 쏘느냐며 반발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또 당시에는 안과 의사들도 대부분 시력교정수술의 효과를 잘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 수술은 회복기간 동안 다소 통증이 따랐다. 그래서 당시 수술을 받은 사람이 눈알이 빠질 것 같다, 애 낳는 것보다 아프다며 응급실에 실려 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다면 안전하다고 하는 라식수술은 언제부터?

“90년대 초부터라고 보면 된다. 엑시머 레이저와 방사상각막교정술(RK)을 합쳐 놓은 것이 라식수술이다. 엑시머 레이저는 정밀하게 교정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지만, 수술 시 아프고 회복도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대신 RK수술은 통증이 적긴 하지만, 특수 칼날로 각막을 절삭하게 되므로 정교함이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었다.

그래서 미세 칼날로 각막 절편을 만들고, 레이저를 조사해 굴절 각도를 조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라식수술의 개발로 발전하게 됐다. 라식수술의 탄생으로 수술통증은 적고, 우수한 교정 효과에 회복 속도까지 빠른 1석3조 이득을 거둘 수 있게 됐다.”

-라식수술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수술 정확도와 안정성이 높고, 수술 통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수술 후 바로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라식이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96년이다. 그 해 13곳의 안과에서 이 수술을 시작했다. 엑시머 레이저와 달리 보급 속도가 그만큼 빠르게 이뤄졌다는 말이다. 수술 다음날부터 잘 보이고, 아프지도 않으니 일대 센세이션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다음 날, 병원에 들어올 때부터 환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원장님, 환상적이에요.’ ‘원장님, 너무 잘 보여요.’ 이런 말들을 그날 이후 수없이 많이 들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의 시력교정을 도왔다고 하던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개인전 은메달리스트인 유도 국가대표 김민수 선수를 도운 게 시발점이었다. 김 선수는 당시 준결승전에서 콘택트렌즈가 빠져서 잠시 경기를 중단해야 하는 일을 겪었다. 그날 나는 국가를 위해 뛰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을 줘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수소문 끝에 김 선수 측과 연락이 닿아, 귀국하자마자 라식수술을 해주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양궁 국가대표 김청태 선수도 그랬다. 당시 경기 장소가 해변이라 바람이 강했다고 한다. 김 선수는 전지훈련 중 콘택트렌즈를 끼고 적응훈련을 해봤는데, 바닷바람 때문에 눈이 너무 빨리 건조해져서 조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내게 털어놨다. 라식수술 후 그는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100명 이상의 국가대표 선수들의 눈을 수술해줬다. 배구 신진식, 농구 유영주, 쇼트트랙 안상미, 수영 유나미, 볼링 변호진 선수 등이 그들이다.”

-요즘 3세대 시력교정술로 불리는 스마일라식은 뭔가?

“‘최소절개 레이저 시력교정술’을 가리킨다. 라식은 각막에 절편을 만들어 각막을 깎은 후 다시 덮어주는 방법의 수술이다. 반면 라섹수술은 각막 상피를 벗겨낸 후 각막을 절삭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스마일 라식은 이 두 방법을 결합, 보완한 것으로 각막을 투과하는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각막 내부를 교정량만큼 절제한다. 그 후 각막 표면에 2㎜ 정도의 미세 절개창을 만들고 그 틈으로 절제된 각막 실질부를 꺼내면 수술이 끝난다. 근시와 난시, 또는 이 두 가지 굴절이상을 동시에 교정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수술 과정은 모두 5분 이내에 완료된다.

라식이나 라섹과 같이 각막표층을 손상시키지 않고, 각막 신경도 거의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수술 후 안구건조증 같은 부작용 발생 위험이 거의 없다.

다만, 이 수술도 선천적으로 너무 얇은 각막을 갖고 태어난 사람과 성장기의 18세 미만 청소년에겐 적용하기 어렵다. 시력교정을 위해 각막을 많이 깎을 수가 없어서다. 이때는 ‘안내렌즈삽입술’(ICL)이 추천된다.

안내렌즈삽입술이란 각막을 손대지 않고 교정용 렌즈를 눈 속에 심어서 시력회복을 도모하는 치료법이다. 고도근시나 원시도 시력교정이 가능하며 각막을 그대로 보존하기 때문에 레이저 시력교정이 어려운 환자도 수술을 받을 수 있다.”

-40대 이후 심해지는 노안은 어떻게 해결하나?

“노안은 40대 이후 노화로 인해 초점거리가 변하고 근거리 시력이 떨어지게 되는 증상이다. 백내장 발생이 증가하는 시기와 맞물려 노안과 백내장 수술을 동시에 해결하는 일명 ‘노안수술’로 해결한다.

백내장은 노화 현상으로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이다.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elgi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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