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개 제약사, 콜린 제제 '버릴까, 말까'

급여 축소에 임상 재평가까지… 모든 적응증 효능 입증해야

기사승인 2020-06-30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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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개 제약사, 콜린 제제 '버릴까, 말까'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보유한 제약사들이 급여 축소에 이어 임상 재평가라는 난관에 부딪쳤다. 품목·적응증 취사선택의 기로에서 134개 제약사들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치매약으로 알려진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뇌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뇌기능 개선제 성분이다. 기억과 학습을 돕는 뇌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을 보충해 뇌신경 손상으로 저하된 신경전달 기능과 신경세포 기능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에 대한 의문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콜린알포세레이트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당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7년부터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와 같이 효과성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은 의약품이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임상적 유용성과 효능에 대해 조속히 재평가를 실시하고,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합리적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논평을 통해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이탈리아에서 허가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대로 된 근거 자료 없이 2000억원 넘는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치매 예방약·뇌 영양제 등등 그 이름은 화려하나, 미국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만 판매되고 있고, 이런 용도로는 광고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930억원이었던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약품 청구금액은 ▲2014년 1102억 원 ▲2016년 1662억 원 ▲2018년 2705억 원 등 점차 증가했다.

오랜 논란 끝에 콜린알포세레이트 처리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 11일. 심사평가원은 제6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열고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급여를 대폭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참고로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적응증은 ▲뇌혈관 결손에 의한 2차 증상 및 변성 또는 퇴행성 뇌기질성 정신증후군: 기억력 저하와 착란, 의욕 및 자발성 저하로 인한 방향감각장애, 의욕 및 자발성 저하, 집중력 감소 ▲감정 및 행동변화: 정서불안, 자극과민성, 주위무관심 ▲노인성 가성우울증 등 총 3개다. 심사평가원은 이 가운데 치매로 인한 첫 번째 적응증에만 급여를 유지하고, 나머지 두 적응증에는 선별급여를 적용, 본인부담 비율을 80%로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효능 논란에 대한 정리에 나섰다. 식약처는 이미 23일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의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든 적응증에 대한 임상 재평가를 실시한다고 공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34개사의 255품목이 존폐 갈림길에 놓였다. 제약사들은 품목을 유지하려면 오는 12월23일까지 식약처에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계획서를 기한 내 제출하지 않거나, 품목을 포기하기로 결정해 임상시험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의견서도 내지 않은 제약사는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렇듯 관계당국이 속도를 내자 제약사들은 고민에 빠졌다. 매출 축소가 예상되는 품목을 유지하기 위해 당장 임상시험을 계획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보유 제약사 가운데는 자체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기 벅찬 중소기업이 절반에 달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적응증 일부를 포기하거나, 품목 자체를 포기하는 제약사도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동 임상시험을 진행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도 돌파구로 언급되고 있다.

설상가상 임상 재평가를 진행키로 해도 시험 설계가 만만치 않다. 제약사들은 식약처로부터 약이 허가받았던 모든 효능·효과를 입증해야 기존 적응증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제약사가 제출한 임상시험 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허가된 효능·효과의 일부만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면 식약처는 약의 허가사항을 변경할 수 있다. 즉,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품목의 세 가지 적응증을 모두 유지하려면 최소 3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품목 보유사 가운데 매출 규모가 큰 기업들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들이 ‘총대를 메고’ 임상시험에 나선다면, 나머지 기업들은 공동 참여하는 형태로 비용 부담을 완화해 재평가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출 규모 상위 제약사들은 정작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종근당글리아티린연질캡슐’을 보유한 종근당 측 관계자는 “재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확정됐다”면서 “세 가지 적응증 모두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공동 임상시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계획한 사항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글리틴시럽’을 보유한 제일약품 관계자는 “임상 재평가 실시 여부를 확답하기는 어려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효능에 대한) 논란이 있는 사안인 만큼 아직까지는 상황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며 “내부 논의 중”이라고 일축했다. JW중외제약도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뉴글리아시럽’의 임상 재평가 진행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JW중외제약 관계자는 “회사의 전체 매출에서 뉴글리아시럽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제약사들에게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임상 재평가에 많은 변수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상시험에 어느 정도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지 미지수”라며 “만약 임상시험을 실시해 재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임상시험이 콜린알포세레이트의 효능은 미미하다는 결론으로 끝난다면 적응증은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저마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 품목을 살렸을 때 발생할 비용과 수익을 예측, 전략적 판단에 나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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