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유치하지만 바다니까 괜찮아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성장과 치유의 로맨스 다이어리

기사승인 2020-07-0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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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누군가를 만나 좋아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대부분 로맨스 장르 영화는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그린다. 그들이 얼마나 운명적인 만남을 하는지, 혹은 어떤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그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설레고 흥미롭다. 일본 애니메이션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은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에 주목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만큼 복잡하고 까다롭다.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감독 유아사 마사아키)은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히나코(카와에이 리나)와 미나토(카타요세 료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일부러 바다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서핑을 좋아하는 히나코는 어느 날 아파트 화재로 옥상에 고립되는 위기에 처한다. 히나코를 구해준 건 소방관 미나토. 두 사람은 함께 서핑을 다니며 가까워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연인이 된다.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뒤로하고 미나토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히나코는 실의에 빠진다.

[쿡리뷰]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 유치하지만 바다니까 괜찮아

전반적으로 옅은 현실감 덕분에 이야기가 유치하게 느껴질 위험이 있다. 미나토가 사고를 당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눈다면, 전반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선으로, 후반부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전개된다. 대단한 CG 효과 없이도 황당한 설정을 그럴듯하게 구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승전결을 뚜렷이 찾기 어려운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의 낯선 구조는 관객이 몰입할 수 없게 자꾸 밀어내는 느낌마저 준다. 누군가의 부재를 극복하는 과정을 청춘의 성장과 연결하려는 시도 역시 억지스럽고 가르치려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불편하다.

그럼에도 ‘너와 파도를 탈 수 있다면’이 구현하는 평화롭고 따스한 시공간은 영화를 즐길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바닷가 마을이 주는 여유, 그리고 자유의 감각은 도시에선 찾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사소한 일상의 시간과 별 것 아닌 대화,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대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천천히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 되어버린다. 이야기의 굴곡과 인물들의 감정 변화도 적당한 선 안에서 안정적으로 오간다.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정도로 심각한 일마저 쿨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대범한 태도 역시 인상적이다.

오는 8일 개봉. 12세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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