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학원광고 파문, ‘광대’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빚어낸 ‘촌극’

기사승인 2009-03-02 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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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연예]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이 아니야, 내 환상일 뿐’

가수 신해철의 사설학원 광고 파문 해명을 놓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네티즌이 올린 평이다. 문구는 신해철 1집 앨범 ‘안녕’의 가사에서 따왔다.

신해철은 1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사설학원 광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 광고가 실린지 20일 만이다. 신해철의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그동안 자신은 공교육의 폐해에 대해 집중적으로 비판했고, 사교육 반대론자가 아니라는 게 골자다.

신해철은 이번 사설학원 광고 파문을 두고 1일부터 총 5편의 글을 작성했다. 장문의 글에 담긴 신해철의 입장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신해철은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는 “나는 공교육의 총체적 난국을 내가 생각해도 과격할 정도로 비판해 왔지만, 입시교육 비판은 그러한 공교육 비판의 일부였지,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라며 “그렇다고 내가 사교육 예찬론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해철은 “내 생각에 사교육이란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것이다. 필요하면 쓰고 싫으면 안쓰면 되는 선택의 여지가 있으나, 공교육은 음식 같은 것”이라며 “없으면 죽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짜증과 불만은 늘 공교육을 향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신해철은 대중과 미디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불과 몇 개의 발언을 추출해 황당한 논리적 비약을 첨가하고, 그것을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 위에 뿌리면 사람 하나 바보 만들기는 쉽다”며 “인터넷의 속성은 한 인간의 일생에 걸친 생각과 행동을 불과 3∼4개의 단어로 마음대로 재단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신해철은 자신이 광고에 출연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처음 광고 제안을 받았을 때 ‘적과 동침이 되든 동상이몽이 돼든’이란 카피문구가 평소 내 지론과 너무나 똑같아 깜짝 놀랐다”며 “라디오보다 더 강한 매체를 통해 꼭 하고 싶던 얘기다. 이 슬로건이 18년 만에 나에게 광고를 찍게 했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욕설을 누가 받아야 하는가

신해철의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개인적 견해, 넓은 의미의 교육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분명하다. 일부 네티즌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신해철의 주장을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신해철의 1차적인 잘못은 존재한다. 광고 출연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감이 결여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신해철은 “나는 24시간 운영 학원에 반감을 표시했었다. 하이스트 학원 광고 의뢰가 왔을 때 이 학원에 대해 상세히 조사를 지시했는데, 막상 이 학원이 24시간 학원이라는 사실을 보고 받지 못했다”며 “이는 명백히 나의 불찰이며 이 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 회사가 정한 카피문구. 불쾌도 10%”라며 “(CF) 촬영 때는 맞춤형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손동작을 찍겠다고 하고서 지면에는 내 손 안에 합격자 숫자를 늘어 놓았다. 불쾌도 100%. 다음에 CF를 찍을 일이 생긴다면 계약서에 광고 최종본을 검열하겠다고 써넣어야 겠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신해철은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자신의 교육관을 밝히고, 과격한 문체와 표현을 동원해 대중과 미디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출연한 광고가 어떻게 표현될 것인지에 대해선 사전에 알지 못했다.

만약 신해철이 자신의 평소 교육관과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광고가 나올 것을 직감했다면 광고 출연을 감행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소위 국민정서법을 고려한다면 그랬을 게 틀림없다.

유명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논란의 핵심을 전혀 잘못 짚고 있다”며 “신해철은 자신이 출연한 광고가 어떻게 나갈지 사전에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광고주와 광고 제작회사가 신해철의 의도를 왜곡했거나, 신해철이 별 다른 생각 없이 광고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해철이 이번 파문으로 인해 억울한 피해를 입고 있다면 자신의 교육관을 소개하고, 대중과 미디어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것이 아니라 광고주와 광고 제작회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나간 광고를 그대로 놔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신해철은 묘한 정공법을 선택했다.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자신의 교육관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했고, 대중과 미디어를 노골적으로 성토하며 손가락 욕설을 사용했다. 정작 신해철이 손가락 욕설을 사용할 상대는 광고 모델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광고를 제작한 이들이 아니던가.

신해철 학원광고 파문, ‘광대’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빚어낸 ‘촌극’


공교육과 사교육의 함수

신해철의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견해도 알쏭달쏭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입시교육 비판은 공교육 비판의 일부였지,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라며 “사교육이란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것이다. 필요하면 쓰고 싫으면 안 쓰면 되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사교육 반대론자가 아니란 것이고, 개인의 선택에 따라 사교육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신해철은 이 같은 입장은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한국적 현실을 도외시한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중고생 학부모들 중 사교육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지 생각해봤어야 했다. 학벌로 줄세우기가 성행하는 사회에서 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지 오래다.

신해철의 주장이 이상으로 실현되려면 사교육이 공교육처럼 어느 정도 평등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부모가 가진 것이 없어도 자녀가 풍부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학생이 공교육과 사교육을 직접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토양도 마련되어야 한다.

신해철이 광고를 찍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공교육의 몇 배에 달하는 학원비가 소요되는 상황에서 수용자 입장에서의 교육적 평등은 애초부터 이뤄질 수 없다.

만약 신해철이 작금의 공교육 상황을 개탄하면서 사교육의 필요성과 선택에 대해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면 애당초 누구나 쉽게 사교육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돈이 없어 사교육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공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불특정다수가 있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너무 이상적이다.

아울러 신해철은 만약 정부의 교육정책이 사교육 중심으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를 비판할 수 없다. 그의 표현대로 해석하면 입시를 선택한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친학생적 정책이기 때문이다.

신해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끊어야

이번 사설학원 광고 파문이 확대된 것은 주인공이 신해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그룹 무한궤도로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신해철은 솔로 앨범과 그룹 넥스트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서태지, 신해철, 정석원은 소위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우리나라 가요계의 아이콘이다.

신해철은 활동 폭은 가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대중문화와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특유의 언변과 문제의식으로 떠올랐고, MBC ‘100분 토론’에 단골로 출연하는 진보 논객 중 한 명이다. 지난 2002년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문제는 신해철을 바라보는 대중의 관심이 당초 뮤지션의 위치에서 논객의 위치로 급속도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신해철이 음악적 지향점을 변화시키고, 그룹 넥스트가 해체와 재결성을 반복했지만 대중은 뮤지션 신해철보다 논객 신해철의 입에 더욱 큰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사설학원 광고 파문에서 드러난 신해철의 행보는 엄청나게 자유로운 뮤지션의 위치였다. 신해철은 파문이 발생한지 20일만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고, 마음껏 대중과 미디어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표현과 사진을 사용했다. 그의 직업이 국내에서 활동하는 논객이라면 퇴출될 정도의 수위다.

그렇다면 대중도 신해철을 향한 관심의 영역을 뮤지션의 틀로 제한해야 한다. 무작정 신해철의 발언에다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게 아니라 하나의 자유인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마왕’의 말이 언제나 옳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번 파문은 신해철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대중의 자승자박이자, 진중권의 표현대로 한낱 ‘광대’의 주장에 대해 너무 깊은 의미를 부여했던 현상이 빚어낸 ‘촌극’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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