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나라 망신시킨 전주시

기사승인 2009-03-29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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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스포츠] 김연아가 200점을 돌파하며 금메달의 위업을 이룩한 2009 국제빙상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국내 지자체 관계자들의 행태가 세계 언론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 벌어졌다.

29일(한국시간)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연기가 끝난 직후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 룸에 양복 차림의 한국인 10명 정도가 몰려왔다. 이들은 취재진만 들어올 수 있는 프레스 컨퍼런스 룸의 맨 앞자리를 모조리 차지했으며, 김연아를 비롯해 2, 3위를 차지한 조애니 로셰트와 안도 미키의 인터뷰 시간에 내내 떠들어댔다. 이 때문에 미국 시카고 트리뷴과 LA 타임스 기자 등 해외 취재진 가운데는 ISU 관계자에게 “기자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냐” “조용히 좀 시켜달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해외 기자들의 눈총을 받은 이들은 송하진 전주시장을 필두로 한 전주시 공무원들과 전주시의회 의원들. 이들은 공식 인터뷰 직전에 이곳에 몰려오더니 한국 취재진에게 “내년 2월에 전주에서 4대륙대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김연아가 국가를 위해서 이 대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한국 언론이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취재진은 “내년 2월 4대륙대회는 밴쿠버 올림픽 직전에 열리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훈련하는 김연아의 컨디션을 고려할 때 출전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정말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길 바란다면 김연아가 이 대회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맞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들 공무원과 함께 온 전북 지역지의 모 기자는 공식 인터뷰 말미에 김연아에게 “내년 2월 전주에서 열리는 4대륙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특히 “한국 국민으로서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이 고맙다”는 취지의 긴 발언으로 해외 취재진의 실소를 자아내더니 “해외에서 이런 성과를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국민들 앞에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해 프레스 컨퍼런스 룸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 김연아는 “4대륙대회가 올림픽이 있는 2월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토론토에서 훈련하기 때문에) 아마도 일정상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며 거절했다. 이에 따라 머쓱해진 전주 지자체 관계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지만 프레스 컨퍼런스 룸에 남은 한국 기자들은 해외 언론의 비웃는 눈초리에 시달려야 했다.
로스앤젤레스=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