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넘어 막장으로… 막장드라마,시청자 사회 의식 마비 시킨다

기사승인 2009-02-12 18: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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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 넘어 막장으로… 막장드라마,시청자 사회 의식 마비 시킨다

[쿠키 문화] 막장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이랄 수 있는 물질만능과 욕망 추구라는 소재의 극적 구성을 넘어서 반사회적 가치를 일반화시켜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죄책감 없는 복수, 비윤리가 난무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초중고생을 주시청자로 삼은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학생들에게 건전한 사회적 가치를 심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질만능주의를 일반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 선정성보다 더 문제가 된다는 폭력 장면도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다. 문화평론가들은 “이전까지 자극적 소재의 드라마가 ‘배설’의 수준이었다면 요즘 드라마는 미디어 폭력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막장 사회’로 몰아간다”는 지적이다.

시청자의 사회의식 마비

막장드라마는 비현실적인 요소들로 시청자들의 인지능력을 마비시키는 등의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배경이 되는 신화고등학교. 대한민국 상위 1%만 다니는 학교로 이 중에서도 외모, 경제적 여건이 가장 좋은 학생들의 모임인 ‘F4’가 학교의 실세다. 이들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신발을 신고, 최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전용기를 타고 남태평양으로 주말여행을 떠난다. 평균이 사라진 학교다.

문화평론가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문과)는 “특목고를 지향하는 교육 현실이 학생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나도 다른 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며 “드라마는 특목고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반면, 현실을 긍정적으로 개척할 힘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막장드라마는 또 다른 막장드라마를 양산한다. 욕하면서 보던 시청자도 빠른 전개와 판타지에 재미를 느껴 윤리에 무감각해지고 제작진은 이런 시청자가 이탈하지 않도록 다음 방영분에서 더욱 독한 상황을 연출한다. 결국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되는 것. 또다른 문화평론가 김성수씨는 “시청자가 막장드라마에 환호하고 이에 따라 광고 수입이 높아지면, 방송사는 계속 막장드라마를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범죄의 부추키는 듯 하는 것도 문제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는 금잔디가 납치, 감금되는 장면(2월9일), 금잔디가 약에 취해 호텔방에 끌려가는 장면(1월13일), 남학생들이 금잔디를 겁탈 시도하는 장면(1월6일) 등이 법이라는 안전장치 없이 방영됐다. 또 ‘아내의 유혹’은 남편이 아내를 익사시키는 장면(2008년 11월3일), 애리가 칼로 협박받는 장면(1월12일), 강재가 은재를 납치하는 장면(10일)도 방영됐다.

ID ‘minbii20033’은 “‘아내의 유혹’은 치외법권 드라마”라며 “범죄는 죄다 나오는데 경찰은 없다. 마지막 회까지 한 명도 파출소 근처에 안 갈 것 같다”고 꼬집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강호순 납치, 살인 사건 이후 사회적 불신이 만연한데, 범죄 드라마가 사회를 더 혼란시키고 모방 범죄를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대책은 없나

전문가들은 방송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시청자들이 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막장드라마 양산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시청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최영균씨는 “방송사가 막장드라마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이상 이를 스스로 멈추기는 어렵다”면서 “시청자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찬 교수(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도 “막장드라마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비판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왔지만 개별적인 비평에 그쳐 힘을 얻지 못했다”면서 “시청자, 언론인,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강력하게 문제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도적으로는 드라마를 사전에 제작,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막장’식 내용이나 장면을 거를 수 있는 ‘드라마 사전 제작제도’를 활성화하고 방송 프로그램의 품질 평가 지수인 ‘수용자평가지수(KI)’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부장은 “드라마 제작후 방송이 안 될 때의 위험 부담 때문에 드라마 사전제작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적절히 보완해 제작이전의 기획단계에서 사전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찬 교수는 “KI의 결과에 따라 제작진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초중고때 미디어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영찬 교수는 “시청자들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병선 박유리 기자
junbs@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