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기사승인 2019-10-11 12: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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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키고 책임을 회피하게 하는 마법의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많은 약점을 가졌는데요.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문제도 없어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의도가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를 파악하지 못한 관성적 사고의 나태함을 드러낸 꼴이 되기 때문이죠. 

최근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한 인물이 있습니다. 래퍼 민티인데요. 민티는 지난해 자신을 2002년생으로 소개하며 Mnet ‘고등래퍼2’ 지원 영상을 공개했었죠. 그런데 당시 영상이 미성년 여성을 향한 그릇된 성적 환상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나를 먹어’(EAT ME)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와 짧은 하의, 다리를 강조한 자세, 무엇보다 이 영상으로 공개한 자작랩 ‘유 두’(YOU DO)의 가사 때문이었죠. 이 곡에서 민티는 “언니는 롤리타 아니고 섹시 콘셉트”라고 주장합니다. 이후 발표한 ‘캔디 클라우디’(Candy Cloudy)는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내용이고요.

당시에도 민티와 민티의 노래를 둘러싼 논란이 거셌는데, 최근 민티가 10대가 아닌 28세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그를 향한 비판 여론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이런 콘텐츠를 상품화했다는 지적인데요. 민티는 지난 9일 유튜브를 통해 “롤리타 논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절대 (롤리타 콘셉트를) 노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유 두’)랩 영상을 올릴 때 개그 영상 식으로 생각했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롤리타로 욕을 많이 먹어서 반감이 생겨서 그 이후로도 그런 스타일을 계속 유지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민티가 롤리타 콘셉트를 노리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 말해 청소년을 성적으로 대상화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콘텐츠의 유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도가 어떻게 수용될지 인지하지 못한, 그의 둔감한 젠더 감수성을 인정하는 꼴이죠. 다행이라고 해도 될까요. 민티는 자신의 지난 콘텐츠들을 보며 반성했다고 합니다. “1년쯤 지나 그 영상을 다시 봤는데, 확실히 기괴하고 야하더라.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했을 때 그 길을 가면 안 됐던 건데 많이 창피하고 후회스럽다”는데요. 그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뭔가를 배웠기만을 바랐을 뿐입니다.

[친절한 쿡기자]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가 활용된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볼까요. SBS ‘런닝맨’ 제작진은 지난 6월2일 방송에서 배우 전소민이 기침하는 장면에 ‘탁 찍으니 억 사레들림’이라는 자막을 달았다가, 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러자 제작진은 “당시 녹화 상황에 대한 풍자의 의미로 썼으며, 관련 사건에 대한 어떤 의도도 전혀 없다”고 해명했는데요. 글쎄요. 이 해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문제의 자막을 쓴 제작진이 ‘탁하고 치자 억하고 죽었다’는 당시 경찰의 발언을 몰랐다는 것이 입증돼야 하는데, 과연 이런 발언을 모르는 상태에서 ‘탁 찍으니 억 사레들림’이라는 자막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더 나빴던 건 ‘런닝맨’ 제작진의 사과 방식입니다. 제작진은 당시 “불편하셨을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더 주의해 제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는데요. 자신들의 잘못을 교묘하게 축소시키는 사과입니다. ‘불편하신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다’가 아니라,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사과가 옳습니다. ‘탁 찍으니 억 사레들림’이라는 자막이 준 불편함은 시청자의 주관적인 감정이라기보단, 제작진의 부주의 혹은 역사의식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SBS는 앞서도 여러 차례 일베 표현을 내보내 논란이 되지 않았습니까.

사과문에서 마법의 표현이란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파악하고, 이런 잘못을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나열하는 ‘올바른’ 사과문이 있을 뿐이죠. 성찰과 개선 없이 그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사과는 공허할 뿐입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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