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감독'에서 '예능 신생아'로… 인생 2막 여는 스포츠 스타들

'호랑이 감독'에서 '예능 신생아'로…방송계가 이끌어낸 스포츠인 제 2막

기사승인 2019-11-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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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대통령' 허재, '양신' 양준혁, '테니스 왕자' 이형택, '천하장사' 이만기, '사격 황제' 진종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도마의 신' 여홍철, '레슬링 신화' 심권호, '한국 최초 UFC 파이터' 김동현. 이들이 한데 모여 조기축구 팀을 결성했다. 곧 수영선수 박태환도 합류할 예정이다. 최근 JTBC에서 최고 시청률 7.2%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뭉쳐야 찬다'의 이야기다. 각계에서 '전설'로 불리던 선수들이 뭉친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대단한 시너지를 기대해 볼 법 하지만 승승장구했던 선수 시절 때와 달리 초등학생 팀에게 14 대 1로 패하는 등 오합지졸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특유의 승부근성으로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들처럼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스포츠 선수들을 '스포츠'와 '엔터테이너'를 합쳐 '스포테이너'라 부른다. 1992년 씨름판을 떠나 MBC 특채 개그맨으로 방송계에 데뷔한 강호동은 스포테이너 1세대다. 그는 특유의 사투리가 섞인 말투와 카리스마 있는 진행으로 사랑받으며 2007년 SBS 방송연예대상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공중파 3사 대상을 휩쓸었다. 한때 SBS 'X맨-일요일이 좋다', '스타킹',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KBS '1박2일' 등에서 활약하며 국민 MC 유재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2011년 '탈세 논란' 이후 잠정 은퇴했으나 1년 만에 복귀해 최근에는 tvN '신서유기' 시리즈, JTBC '한끼줍쇼' 등에 출연 중이다.  

강호동에게 바통을 이어 받은 선수는 전 축구선수 안정환과 전 농구 선수 서장훈이다. 

안정환은 과거 뛰어난 볼 컨트롤과 드리블, 정확한 패스와 슈팅으로 데뷔 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선수였다.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동하다 2014년 MBC '아빠어디가 시즌2'를 통해 방송계에 데뷔했다. 그는 2016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건강 문제로 하차한 정형돈을 대신해 객원 MC로 투입됐는데, 특유의 솔직한 입담으로 결국 고정 자리를 꿰찼다. 현재는 JTBC '뭉쳐야 찬다'에서 '어쩌다FC'의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자신이 방송인이 아니라고 선을 긋던 서장훈은 요즘 방송계를 종횡무진 중이다. 그는 1994년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21점 20리바운드 10더블 슛으로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며 ‘농구의 신’으로 불렸다. 그러나 서장훈은 예능에서 답지 않게 소심하고 겁이 많은 모습을 보인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심한 면모도 보인다. 이밖에도 진지하고 솔직한 면모를 통해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현재는 SBS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 등에 출연 중이다. 

안정환과 서장훈이 스포테이너 2세대라면 신흥 스포테이너로는 허재, 현주엽, 김동현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사람은 전 농구선수 허재다. '예능 신생아'라고 불리는 그는 JTBC '뭉쳐야찬다' 고정 출연을 시작으로 SBS '미운 우리새끼',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SBS '집사부일체', MBC '라디오스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SBS '정글의 법칙', tvN '일로 만난 사이' 등 인기 있는 예능들을 섭렵 중이다. 최근에는 배우 박서준과 피자 광고를 찍기도 했다.

허재는 과거 ‘농구대통령’이라고 불렸다. 그는 국가대표팀에 소속돼 올림픽에 2번 출전했고 아시안게임 3회 출전, FIBA 아시아 선수권 6회 출전 등 활발히 활동했으며 선수 은퇴 후 감독으로 활약했다. 거침없는 언행과 다혈질스러운 면모로 '호랑이 감독'으로도 유명했다.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무례한 질문을 하는 중국 기자들에게 욕설을 내뱉는 장면은 아직도 누리꾼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런 그가 ‘뭉치면 찬다’에서 골키퍼를 맡아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등 '허당미'로 반전 매력을 발산중이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주전에서 제외된 '을왕리 멤버'로 분류된다. 이는 경기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벤치에만 앉아 있는 모습을 을왕리에 피서 온 관광객에 빗댄 별명이다. 허재는 경기가 시작된 지 5분 만에 부상을 당하는 '유리몸'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선수 시절 모습을 기억하는 대중들에게 이런 허재의 캐릭터는 신선하게 다가갔다.

농구 선수로 활약 중인 아들 허훈은 "집에 있을 땐 별말을 안 하시지만 술자리에서나 밖에선 원래 웃기셨다. 난 항상 그 모습을 봐 왔다. 그런데 팬들이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되게 좋아하시더라.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농구계 슈퍼스타 중 한 명인 현주엽은 '먹방계'에서 활약 중이다. 그는 과거 대학 선수 시절 ‘고려대 에이스’로 불렸다. 덩크슛만으로 백보드를 박살 내며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방송계에 발을 들인 후에는 Olive '원나잇 푸드트립',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남다른 먹성을 보이며 관심을 받았다. 이 외에도 SBS '정글의 법칙', 채널A '개밥주는 남자', tvN '버저비터', KBS '트루밥쇼' 등에 출연했다. 또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창원 LG 선수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프로 농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에 지난달 13일까지 치러진 올 시즌 21경기 평균 관중이 지난 시즌 동일 경기 수 대비 2955명에서 3497명으로 18.3% 늘어났다. 누리꾼 ppop****씨는"사실 현주엽이 예능에 나오고 농구팀에 관심 갖은 사람들 많을 듯. 우리 어릴 때 이충희, 허재 시절엔 농구대잔치하면 난리였는데 여태 잊고 살다가 현주엽 때문에 다시 관심 생긴 건 사실"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은 이제 예능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정도다. 올해에만 tvN '대탈출2', '플레이어',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뭉쳐야찬다', 채널A '팔아야귀국 in 인도네시아', SBS '정글의 법칙 in 메르귀'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도 모습을 비췄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UFC 선수이며 격투기 무대에서 ‘스턴건(전기 충격기)’으로 통한다. 그러나 예능에서는 겁이 많고 호들갑스러워 '호들이'라고 불리기 일쑤다.    

'호랑이 감독'에서 '예능 신생아'로… 인생 2막 여는 스포츠 스타들

이 외에도 배구 선수 김연경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공개하며 친근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갔고 전 축구선수 이동국과 격투기 선수 추성훈은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자녀들과의 훈훈한 일상을 보여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스포테이너들의 입지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KBS에서 11월 론칭 하는 ‘태백에서 금강까지-씨름의 희열(가제)'은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한 프로그램이다. 앞서 '제15회 학산배 전국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김원진 선수와 황찬섭 선수가 맞붙은 동영상은 11월 5일 기준으로 200만 뷰를 돌파했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해 KBS는 씨름계 스타를 발굴하는 신규 예능 리얼리티를 기획했다.  

그렇다면 방송계는 왜 스포테이너들을 원할까.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스포테이너들이 방송계에서 활약하는 현상에 대해 "스포츠인들은 연예인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일반인들과 달리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그들과의 소통이 익숙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야외에서 체력을 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스포츠인들이 투입돼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스포츠인들은 순발력이 좋다. 이는 운동을 하면서 갖게 된 특징인데 현장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순발력이 발현된다"고 분석했다. 또 "스포츠인들은 이미 인지도가 있기 때문에 그 인지도를 이용해 방송으로 이어가기가 쉽다"고 덧붙였다. 

스포테이너로 활동하며 롱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방송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러나 전 야구선수 강병규, 전 씨름선수 박광덕 등 조용히 사라진 선수들이 많다. 이에 정덕현 문화 평론가는 "(롱런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방송을 잘 알아야 한다. 방송 트렌드가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정확히 짚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것은 방송인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인데, 트렌드에 계속 적응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엄지영 인턴 기자 circl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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