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까말까] 절망 끝 희망과 욕망 ‘99억의 여자’

/ 기사승인 : 2019-12-05 16: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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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끝 희망과 욕망 ‘99억의 여자’

절망 밖에 남지 않아 삶을 저버리려던 정서연(조여정)은 우연히 사고현장을 목격한다. 부상자를 보고 신고하려던 것도 잠시, 서연은 사고현장에 가득한 돈다발을 보며 생각을 고친다. 수십억의 돈만 있으면 지긋지긋한 인생을 모두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탐욕이 그의 마음에 깃든다. 신고 전화의 발신 버튼은 끝내 눌리지 않고, 부상자는 숨을 거둔다. 

지난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KBS2 수목극 ‘99억의 여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딘가 비틀려 있다. 서연의 남편 홍인표(정웅인)는 배우자에게 다정한 말투로 존댓말을 쓰다가도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아 그를 가혹하게 학대한다. 서연과 고교 동창인 윤희주(오나라)는 그와 둘도 없는 친구인 것처럼 굴지만, 생활이 어려운 서연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정다감한 희주의 남편 이재훈(이지훈)은 아내에게 키스한 뒤 입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입술을 닦고,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

주인공 주변에 악당이 포진한 것은 당연한 설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도 심상치 않다. 첫 회는 곧 99억을 손에 쥐게 될 서연이 얼마나 착하고 정의롭게 살았는지 설명하는 대신 그가 처한 끔찍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서연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선하기만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친한 친구인 희주의 남편과 불륜 관계라는 점에서 도덕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서연이 돈을 손에 넣는 장면은 흥미롭다. 서연은 함께 있던 재훈이 신고를 하겠다고 나서자 이를 말리고 돈을 숨기자고 제안한다. 선한 인물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떠밀려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다. 도덕적 당위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는 주인공은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서연이 처한 상황과 그의 선명한 의지가 그릇된 선택도 지켜보게 한다. 절망 끝에 99억을 움켜쥔 여자가 세상과 어떻게 맞서 싸울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에 이 사건에 갑작스럽게 휘말린 강태우(김강우)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며,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서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지도 관전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이나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몰입감을 더하는 것은 연기력에 물이 오른 배우 조여정의 몫이다. 조여정의 존재감은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다만 가정폭력, 불륜 등 자극적인 소재를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연출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과도하게 흔들리는 화면이 보기에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 볼까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와 인물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펼쳐지는 심리극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추천.

■ 말까

가정폭력, 불륜 장면이 오후 10시대 지상파 드라마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위가 높다. 전작 같은 가족극, 따뜻한 분위기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