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전염병

기사승인 2020-01-31 19: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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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전염병소설가 정유정의 장편 소설 ‘28’은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창궐한 서울 인근 소도시에서 일어난 28일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개와 인간 사이 서로 전염되는 정체불명의 병. 이 병에 걸린 사람과 동물은 온몸에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당연히 도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집니다. 약탈, 강간,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국가는 시민과 도시를 버리고, 살고 싶은 이들은 잔인해지고 절망합니다. 공멸하는 것이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2·3차 감염자가 속출하고 중국에서는 사망자가 대거 늘어났습니다. 두렵습니다. 아직 이 바이러스의 전파력과 대응책, 치료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전세기를 이용, 신종 코로나 발병지로 지목된 중국 우한에서 우리 교민 368명을 1차로 귀국시켰습니다. 애초 충남 천안의 한 국가시설에 이들을 격리해 감염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지만, 해당 지역 시민의 반발로 계획을 틀었습니다. 변경된 지역 역시 반대 목소리는 컸습니다. 주민을 설득하려 했던 보건복지부 차관은 물병과 종이컵을,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란을 맞았습니다.

한 배달서비스 노조는 사측에 ‘중국인 밀집 지역 배달금지 또는 위험수당 지급’를 요구했습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인종과 지역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부채질한 겁니다. 온라인 카페에서는 “어린이집에 조선족 아이들이 다닌다”며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까 싶어 등원시키고 싶지 않다”는 글이 계속 올라옵니다. ‘중국인 출입금지’ 팻말을 건 가게들이 늘어나고, 유난히 접촉자가 많았던 감염자를 극형에 처해달라는 청원도 생겼습니다. 

이 모든 일은 언급했던 소설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현재 전염병을 마주한 한국 사회의 민낯입니다. 막연함 공포의 힘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두려움은 너무나 쉽게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한 교민들도 국가의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어떠한 이유로도 특정 인종을 차별하거나 혐오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불안을 기반으로 한 선택은 그 무엇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시민이 힘을 합쳐야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금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 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말이죠.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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