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작고 성의 없는 루머

이준범 / 기사승인 : 2020-03-06 15: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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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가짜뉴스 광풍이 연예계에도 한 차례 휘몰아쳤습니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퍼지듯 출처 없는 연예인 리스트가 전파되듯 빠르게 퍼지고, 소속사들은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에 나섰습니다.

이걸 누가 믿을까 싶은 조악한 리스트였습니다. 지난 3일 ‘신천지 소속 연예인’, ‘신천지 연예인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50여명의 연예인의 이름을 언급한 텍스트가 SNS,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습니다. 텍스트는 마치 생각나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순서대로 적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적혀있었습니다. 가수와 배우로 분류되지도 않았고, 10년 전쯤 작성된 것처럼 뜬금없는 이름도 섞여있었습니다. 해체된 지 몇 년 지난 아이돌 그룹과 축구선수 이름까지 포함돼 있었고요.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성의 없고 설득력 없는 ‘지라시’처럼 보였죠.

텍스트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확산 속도는 빨랐고, 파급 효과는 컸습니다. 지난 4일 오전부터 연예인 소속사들이 하나 둘 공식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모두 비슷했습니다. “소속 아티스트는 해당 종교와 무관”하고 “허위사실 유포에 강경한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라는 얘기였죠. 대신 거론된 연예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점이 과거 비슷한 루머가 돌았을 때의 대처와 달랐습니다. 그것이 연예인에게 더 피해가 되고, 루머 생성자가 바라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아무도 루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중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리스트에는 아무 근거가 없었고, 한눈에 이상한 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요. 소속사들의 대처도 빨랐고, 직접 SNS를 통해 해명하는 연예인들도 많았죠. 빠르게 진화됐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한 연예인의 이름이 신천지와 함께 4일 내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했으니까요.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라도 ‘지라시’에 이름이 적히면 화제에 오를 수 있는 걸 보여준 겁니다.

신뢰할 수 없는 작은 루머가 대중의 불안감을 거쳐 거대한 논란처럼 증폭됐습니다. 만약 지금처럼 전 국민이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신천지라는 종교 집단이 주목을 끄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 같은 황당한 사건에 시선이 쏠리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분명 무엇이든 확실하게 확인하면서 한발씩 내딛는 건 지금 시기에 맞는 안전하고 올바른 태도니까요.

다만 이렇게 쉽게 퍼지고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될 만한 루머는 아니었습니다. 최소한의 성의도, 설득력도 없는 문서가 퍼질 때마다 국민들을 위해 기부 성금을 낸 연예인들에게 상처가 누적되겠죠. 선한 의도의 행동보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의심받는 루머의 악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요. 아마 최초로 리스트를 작성한 누군가도 지금처럼 논란이 커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죠. 그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