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전통문화 바라보기]삶의 정점은 최고가 아니고 최선이다

입력 2020-05-18 1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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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용호  전라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작은 마을에 스님 한 분이 살고 있었다. 들리는 바로는 아직 한 명도 그의 말문을 막히게 한 사람이 없는 소문난 스님이었다.

어느 날 똑똑한 소년이 손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쥐고 스님에게 가서 물었다. “스님, 이 새가 죽은 건가요? 아니면 살아 있는 건가요?”

그리고 생각했다.

‘이 스님이 살았다고 하면 죽이고, 죽었다고 하면 날려 보내야지 내가 드디어 이 스님을 이기는 거야’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얘야, 그 새의 생사는 네 손에 달렸지, 내 입에 달린 것이 아니란다”

그러자 소년은 깜짝 놀라며 새를 날려 보내며 말했다. “스님은 어떻게 이토록 지혜로우신가요?”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다.

“예전에 나는 정말 멍청한 아이였단다 그러나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다 보니 지혜가 생기기 시작하더구나 너는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소년은 슬픈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어제, 어머니께서 점을 보셨는데 제 운명은 엉망이라고 했다는군요”

스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소년의 손을 당겨 잡았다.

“얘야, 네 손금을 좀 보여주렴 이것은 감정선, 이것은 사업선, 이것은 생명선 자, 이제 주먹을 꼭 쥐어보렴”

소년은 주먹을 꼭 쥐고 스님을 바라보았다.

“얘야, 네 감정선, 사업선, 생명선이 어디 있지?” 소년은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로 제 손안에 있지요”

그러자 스님은 “그렇지, 바로 네 운명은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니란다 그러니 다른 사람으로 인해 네 운명을 포기하지 말거라”

전해오는 어느 스님의 일화가 말하듯 현재 사회는 세상의 적지 않은 이들이 적은 지식에 자만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작은 꾀로 타인을 속이고 해를 끼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운명과 미래를 개척하기보다는 타인에게 자신의 업을 탓하고 도피하며 아닌 듯 위로받으려 한다.

이러한 모순에 해답은 없을까?

스님은 너무나 명쾌했다. 스님의 답변은 그저 소년의 손을 쥐어보라는, 모든 것은 너의 손안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의지를 만들어 포기하지 말라는 간단하고 현명한 답이었다.

옛 선조들도 막연한 허세, 포기와 관망은 없었다. 조상의 공덕을 위해 치성하던 제례도, 자연을 향한 바램의 제사였던 기우제도 항상 준비하는 정성과 존경 그리고 실천이 모든 과정과 함께 존재했었다. 제례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고 예와 법도를 흠모하며 더불어 그에 따른 음악도 만들었다. 그리고 공경과 덕망을 높여 후대에 전승하게 하였다. 자연에 대한 기우제도 뜻을 모으기 위해 마을의 단합, 공양 음식을 위한 조달, 농경지의 물고 파기, 트기 등 다양한 방법을 배우고 마련했으며 더불어 제를 올려 간절하게 염원했다. 즉, 손안의 운명선만을 믿고 그저 지켜보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삶의 정점은 최고가 아니고 최선이다.

꿈을 꾸며 노력하고 그 일을 사랑한다면 운명은 바뀌지 않을까? 오늘, 우리의 손을 꼭 쥐어보자. 그리고 다시금 최선을 다해 한 번 더 시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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