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재철 금투협회장은 수첩왕자인가

기사승인 2020-07-24 06: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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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재철 금투협회장은 수첩왕자인가
[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에게는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있었다. 수첩만 보고 발언해서다. 그의 재직 시절, 수장이 대본 없이는 입장 표명도 못 하냐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최근 여의도에 수첩공주에 이어 수첩왕자가 떴다. 바로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이다.

"나재철 금투협회장은 왜 취재진의 질문을 직접 받지 않습니까?"

지난 1월,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취임 기념 간담회에 참석한 취재진 사이에서 터져 나온 비판이다. 취임 후 신임 협회장으로서 금투협의 계획과 입장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자리. 나 회장은 무려 A4 용지 9쪽에 달하는 대본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대본을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읽었다. 방대한 대본을 다 읽고 난 나 회장이 한숨 돌리고, 취재진은 회장이 발표한 입장에 대해 질문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금투협의 입장은 현장에 있던 취재진을 당혹게 했다.

"나재철 회장님께서는 현장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항의하는 취재진을 향해 금투협 관계자들은 '취임 초다, 지켜봐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 후 약 6개월을 지켜봤다. 그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 7월16일, 하반기 기자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나 회장은 어김없이 대본을 들고 나타났다. 장장 15쪽에 달하는 분량. 낭독 과정에서 회장이 읽던 곳을 잊어버려 대본을 들고 한참을 헤매는 희극도 연출됐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 나 회장은 직접 응하지 않았다. 그가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사이, 금투협의 실무진들이 그의 역할을 대신했다.

직접적인 역할을 회피하는 나 회장의 모습을 금투협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투협이 대체 뭐하는 곳인지 잊어버릴 정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취임 초부터 정부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영향을 미칠 주요 사안마다 정부 입장에 '무조건 환영' 일색이었던 까닭이다.

투자업계를 얼어붙게한 고강도 부동산PF 규제안이 나왔을 때도, 금투협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내놨다. 최근 잇따르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에서도 마찬가지다. 헤지펀드시장 성장세가 꺾이고 투자자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상황. 위기를 타개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만, 한참을 침묵하던 금투협이 6개월 만에 내놓은 사모펀드 대책은 내용도 없고 실효성이 극히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금융위가 곧 ELS 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금투협 차원에서의 적극적 입장 표명은 보이지 않는다.

금투업계는 현재 비상사태다. 나 회장은 금투협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할 의무가 있다. 금투협은 회원사인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회원사들이 금투협에 납부하는 수백억대의 회비는 '일을 하는데 쓰라는' 것이다. 과연 나 회장과 협회는 일하고 있나.

ysyu1015@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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