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왕” 비대칭적 구조가 대학내 성폭력 키운다

정진용 / 기사승인 : 2020-07-30 05: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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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B교수 사건대응 위한 특별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교수들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특별위원회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대학가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교수의 성폭력을 용인하고 재생산하는 대학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학교 음대 내 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특위)는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교수 파면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대학 본부에 촉구했다. 서울대에서는 음대 교수 2명이 제자 성추행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어서문학과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해 해임됐다.

학생들은 “신 교수 성희롱 사건부터 사회대 H 교수, 수의대 H 교수, 공대 H 교수, 자연대 K 교수, 경영대 P 교수, 서어서문학과 A 교수, 음대 B 교수, 음대 C 교수 등 서울대 교수들의 반복되는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참을 수 없다”면서 △음대 B교수·C교수 파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책임 있는 해결 △교원징계위원회 학생 참여 즉시 시행 △교수·학생 권력관계 해소 등을 학교 측에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귀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은 “해외 출장 중 학생 방에 허락 없이 드나들고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시도하고, 심지어 학생 장학금에까지 손을 대는 기가 막힌 행동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스승’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고 있다”면서 “이것은 교수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은폐되어 온 구조적 문제다. 스승이라는 관계와 스승의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학계,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문제제기 할 수 없게 하는 조직문화, 학생의 자리는 없는 교원징계위 등 모든 것이 뒤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가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은 증가 추세다.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대학·전문대학 성폭력 사건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73건에서 2018년 115건으로 증가했다.

가해자는 대부분 교수다. 전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 신고·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신고센터 설치 이후 지난 8일까지 304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185건이 처리완료됐다. 처리완료된 185건 중 대학에서 발생한 사건이 91건이었고 가해자는 모두 교원이었다.

사진=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의 모습/ 박태현 기자
특히 도제식 교육과 교수 라인에 의해 학생 미래가 좌우되는 예술계에서 교수의 성 비위 외에도 ‘권력형 폭력’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 34개 예술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예술대학생 네트워크가 지난해 발간한 ‘예술대학의 성폭력·위계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은 ‘교수의 부조리’ 사례로 ▲ 교수 티켓 강매 ▲ 선물 종용 ▲ 장학금 수거 ▲ 열정페이/권위페이(학교 및 교수 개인행사 무보수 강제동원) ▲ 인권침해 ▲ 성차별 등이 제시됐다.

문제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 신고 하더라도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발생한 123건의 성비위 사건 중 해임이나 파면의 중징계를 받은 건수는 65건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학생들은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대학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 위원과 학생이 추천하는 외부위원을 포함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학생들은 대학 본부와 동등하게 대학을 구성하는 구성원이자 주체로, 학생이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논리다.

국회에서는 지난 9일 권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권 의원은 △대학 내에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고, 대학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위원과 학생이 추천하는 외부위원을 포함하도록 하는 법안(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범죄 수사를 받는 교원을 신속하게 직위 해제하도록 하는 법안(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한 상태다.

서울대 C교수 피해자를 대리하는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교수는 대학교 내에서 엄청난 권력을 가진 존재다. 등록금 내는 학생들이 교수 심기 건들지 않으려 노심초사하고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 왕과 다를 바 없다”면서 “졸업 논문 통과 여부는 학생 인생을 결정하는 중대한 일이다. 교수가 논문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직장처럼 퇴사하고 다른 데로 이직을 할 수도 없어 사실상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교수와 학생 간 수직적 관계 때문에 교수가 성희롱, 성폭력 등을 해도 학생들이 바로 문제제기 하기 어렵다. 교수들이 힘의 불균형이라는 취약성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학교 성비위 사건을) 교수 개인의 일탈로 더이상 치부해서는 안된다. 구조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대학교 차원에서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