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1대 국회에는 유통 규제 관련 법안만 20여건이 발의된 상태다. 이 가운데 8개가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 개정안으로,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유통매장들이 대형마트처럼 매월 의무휴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의 규제 기조가 여전한 만큼, 통과 가능성은 상당히 높게 점쳐진다. 업계에서는 코로나보다 추후 유통법이 더 걱정된다는 말도 들린다.
곳곳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0년 전 유통 상황에 맞춰져 있던 유통법이 더 이상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과거 단골 소재로 사용하던 기업 때리기를 통해 여전히 ‘보여주기 식’ 성과를 내려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도 나온다.
평소 우리의 일상은 돌아보자, 이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남대문시장을 갔던가. 대신 우리는 쿠팡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의무휴업 8년간 대형마트는 영업이익은 반 토막이 났고, 지금 매장을 대거 폐점하는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일례로 롯데쇼핑은 현재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등 700여개 점포 중 약 30%인 200여개의 점포를 정리하는 대수술을 진행 중이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후 국내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와 슈퍼의 영업 손실은 지난해까지 무려 약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구조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쟁으로 변했는데, 대형마트 규제는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연일 강해지고 있다. 의무휴업은 오프라인의 온라인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복합쇼핑몰이 영세상인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사실 역시 변하고 있다. 한국유통학회 조춘한 교수(경기과기대)의 ‘대규모점포 증축 및 신규 출점이 상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복합쇼핑몰이 외부 고객을 유입하면서 인근 상권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트렌드 속에서 그나마 복합쇼핑몰이 고객을 오프라인으로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신용카드 가맹점 매출 데이터와 고객 카드 데이터를 통해 복합쇼핑몰의 출점 1년 전과 1년 후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점포 출점 이후 전통시장 고객 7.43%가 대규모 점포로 이동했지만 오히려 11.83%가 새롭게 전통시장으로 유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대형마트’ vs ‘재래시장’ 식의 프레임은 이제 낡았다는 분석들이 업계와 학계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대신 ‘온라인’ vs ‘오프라인’의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마트의 신규 출점보다 쿠팡 등 온라인몰의 폭탄 세일이 더 파급력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차라리 쿠팡을 월 4회 의무휴업 시키는 것은 어떤가. 그만큼 변화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욕을 먹더라도 과감히 변화를 주거나 벗어던져야 한다. 표심이나 이권에 영합해 이를 계속 방치하고 있다면, 결국 더 큰 피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부디 21대 국회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발전법’이 이젠 꼭 이름값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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