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마리 퀴리’ 김히어라 “마리·안느는 관습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 그래서 좋아요”

기사승인 2020-08-27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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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인터뷰] ‘마리 퀴리’ 김히어라 “마리·안느는 관습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 그래서 좋아요”
▲배우 김히어라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세상이 정해놓은 목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리행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비슷한 처지의 마리 퀴리를 돕고, 그에게 선뜻 자신의 소중한 흙 한 줌을 건넨다. 꿈을 위해 치열하게 일하고, 부당한 일엔 주저 없이 목소리를 낸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안느 코발스키는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모두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행동하는 인물이다.

무대 위 안느는 따뜻하고 거침없다. 안느를 연기하는 배우 김히어라의 첫인상도 비슷했다. 김히어라는 배우 이봄소리와 함께 ‘마리 퀴리’서 마리 퀴리의 친구이자, 라듐 시계 직공 안느 코발스키 역을 맡아 무대에 서고 있다. 최근 서울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만난 김히어라는 “오기 전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비상 상황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시원하게 답하며 웃었다. “찾아보면 어디선가 나올 거예요. 괜찮아요.”

[쿠키인터뷰] ‘마리 퀴리’ 김히어라 “마리·안느는 관습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 그래서 좋아요”
▲뮤지컬 ‘마리 퀴리’ 장면

‘마리 퀴리’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보기 힘든 성격의 뮤지컬이다. 주인공 마리 퀴리도 여성이고,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며 연대하는 안느 코발스키 또한 여성이다. 창작극에 여성 원톱, 주요 조력자까지 여성인 이 뮤지컬의 탄생은 실험에 가까웠다. 실험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마리 퀴리’는 초연과 재연을 거치며 점점 완연한 극으로 거듭났다. 관객은 박수를 보냈다. 4개월 만에 돌아온 앙코르 공연은 700석 규모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게 됐다.

“공연할 때는 조명 때문에 관객들의 표정을 잘 볼 수 없지만, 커튼콜을 할 땐 보여요. 마스크 때문에 눈만 보이고 함성도 없지만, 눈빛과 박수만으로도 관객들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해요. 울지 않으려고 하는데, 참아도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아요. 마스크를 하고 150분간 공연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답답함을 참으며 저희와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감동을 박수 소리로 전해주는 관객들을 보면 고맙고 힘이 나요.”

김히어라는 초연 제작 단계부터 안느 역할로 ‘마리 퀴리’와 함께했다. 대사 한마디, 인물의 감정선 하나하나를 여러 제작진, 출연진과 함께 고민하며 만들었다. 공연을 거듭하며 안느도 조금씩 바뀌었다. 초연의 안느가 주어진 환경 때문에 움직인다면, 지금의 안느는 보다 진취적이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프랑스 행을 선택한다. 김히어라는 안느를 도식적으로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 여성 캐릭터의 이분법적 표현을 탈피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과정은 치열했다. 김태형 연출은 “자유롭게 연기하라”라고 김히어라를 북돋웠다.

“여성서사를 다루는 공연이 조금씩 생기는 추세지만, 여성 캐릭터가 더 다양해졌으면 해요. 무대에서 이 인물이 무엇을 하느냐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는 역할 말고, 여자도 그냥 악역일 수 있잖아요.(웃음) 그런 면에서 ‘마리 퀴리’가 좋아요. 마리와 안느는 가냘픈 이미지의 여성 캐릭터도, 팜므파탈도 아니에요. 각각의 꿈과 목표가 있는 인물이에요. 여성 캐릭터를 습관적으로 그려내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기차에서 처음 만난 마리와 안느는 광고 속 인물처럼 산뜻하게 인사하지 않아요. 힘들고 지쳐 있죠.”

[쿠키인터뷰] ‘마리 퀴리’ 김히어라 “마리·안느는 관습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 그래서 좋아요”
▲뮤지컬 ‘마리 퀴리’ 장면

뮤지컬에서 마리를 연기하는 배우 김소향과 옥주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김히어라의 말이 빨라졌다. 두 배우가 얼마나 뜨거운 마음으로 마리를 연기하는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초연부터 호흡을 맞춘 김소향과는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고, 이번 공연부터 합류한 옥주현은 마리와 닮은 점이 많은 배우다.

“소향 언니와는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설명하지 않아도 언니가 마리로서 어떤 짐을 가지고 가는지 느껴져요. 눈빛만 봐도 공감대가 형성돼요. 주현 언니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어요. 기승전 ‘뮤지컬’인 사람이에요. 마리가 과학에 빠져 있듯이 뮤지컬 밖에 몰라요. 언니들이 지금껏 치열하게 무대에 선 덕분에 여성이 주인공이 대극장 뮤지컬도 나오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두 사람이 나오는 ‘마리 퀴리’를 보며 또 다른 도전을 할 수도 있겠죠.”

두 배우에게 마리의 모습이 있듯, 김히어라에게도 안느가 있다. 안느와 닮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히어라는 “나도 뜨거운 사람”이라며 웃었다. 어릴 적부터 부당한 일엔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그런 뜨거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는 “누군가를 지지하는 방법이 안느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김히어라는 자신과 닮은 무대 위 안느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보길 바랄까. 마지막 물음에 신중하게 말을 고르던 그는 곧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안느의 삶이 힘들고 안쓰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안느의 선택이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처음에 안느가 너무 ‘오지랖’처럼 보일까 걱정했어요. 요즘 시대엔 너무 뜨겁게만 느껴지는 인물로 보일까봐요. 하지만 안느는 누가 뭐라고 하든 타인을 위해 투쟁했고, 그 마음은 마리에게 영향을 줘요. 그런 삶을 있는 그대로 멋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안느 처럼 살면 좋지 않을까요.”

inout@kukinews.com / 사진=쇼온컴퍼니 제공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