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숲에서 배우는 치미병(治未病)

박용준 (묵림한의원 원장, 대전충남생명의숲 운영위원)

입력 2020-09-04 16: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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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숲에서 배우는 치미병(治未病)
▲박용준 원장
한의학에서는 치미병(治未病)이라 하여, ‘병이 발생하기 이전에 예방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왔다. 이는 황제내경《黄帝内經》에서 “유능한 의사는 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병을 다스린다”는 상공미치병(上工治未病) 원칙이다. 우리가 즐겨 찾는 숲에서 이런 치미병과 관련된 예방의 실천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숲에서 위로 나무들을 올려다보면 나무들의 맨 위쪽의 바깥 쪽 가장자리 사이에 일정한 패턴의 정교하게 설계된 직소 퍼즐(Jigsaw puzzle)모양의 아름다운 틈새를 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현상을 수관기피(樹冠忌避)라고 한다. 수관(樹冠)은 나무의 가장 윗부분으로, 줄기 끝에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인데 이 부분이 서로 겹치지 않게 떨어져서 위치하는 현상으로, 영어로는 Crown shyness라고 한다. 마치 ‘가지들이 수줍어하면서 몸을 움츠린 것’처럼 보인다는 표현이다.

수관기피(樹冠忌避)는 숲과 나무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현상으로 각 나무의 윗부분이 서로 닿지 않고 일정 공간을 남겨두어 나무 아래까지 충분히 햇빛을 받으며 함께 자랄 수 있다. 이 현상은 특히 숲 꼭대기의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각 나무의 가지 끝부분이 뚜렷한 영역과 경계선 내에서만 성장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숲속의 나무들이 각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서로를 배려하면서 동반 성장을 하는 이 현상은 현대 과학으로도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1. 마찰 가설 (Friction hypothesis) 

바람이 불어 다른 나뭇가지와 마찰하면 나뭇가지의 성장이 제한되기 때문에 인접한 나무에 닿지 않도록 하여 마찰로 인한 기계적인 손상을 피하는 역할을 한다. 

2. 화학적 상호억제 가설 (Allelopathy hypothesis) 

식물학에서 Allelopathy는 식물이 화합물의 생산을 통해 다른 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효과를 의미한다. 식물이 다른 식물 개체들과 화합물을 주고받는 작용을 식물 간 의사소통 방법으로 인식하는 학자들도 있다. 

[박용준의 한의학 이야기] 숲에서 배우는 치미병(治未病)
3. 빛 수용체 가설 (Photorecepters hypothesis) 

화학 신호 외에도 식물이 광 수용체를 통해 다른 개체와의 근접성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다른 나무의 수관과 겹치지 않도록 조절한다는 설이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광 수용체에 의해 포착된 신호는 나무가 인접한 나무에서 멀어지도록 반응을 일으켜 광합성에 필수적인 더 많은 양의 빛을 받아 나무들이 모두 더 생장에 유리한 환경을 얻을 수 있다. 

위의 가설들과 더불어 최근 주목받는 가설로 나무들이 서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해로운 애벌레 등의 해충이나 전염병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한다는 설로 이 내용이 현재 우리의 상황에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느 전염성 질환보다도 위협적인 코로나19(COVID-19)의 전파 속도를 늦추어 확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협력과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마스크 착용과 더불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 사이에 물리적 교류를 줄여 질병이 퍼질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거리를 야외에서는 2m, 실내에서는 1m 이상으로 두어 생활하는 방식을 말한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숲에서 나무들이 그러하듯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미병의 핵심인 것이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지친 몸과 마음을 근처의 숲을 찾아 자연의 지혜인 '나무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배워보면 좋을 것 같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