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호남’ 카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與의 ‘영남 대통령’ 전략에… 野 ‘호남 대통령’ 카드 만지작
원희룡·안철수·장성민, 호남·중도 표심 잡을 인물로 ‘주목’

기사승인 2020-09-20 05: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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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호남’ 카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왼쪽부터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포럼 이사장. 

[쿠키뉴스] 조진수·조현지 기자 =여권이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의원을 전격 제명한 가운데 호남을 향한 야권의 ‘서진 정책’이 본격화되고 있다.

야권은 이른바 ‘영남 꼰대당’이라는 이미지로 지역적 한계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1대 총선과 19대 대통령에서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영남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패배를 맛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호남 후보론이 선거 구도를 선점하기 위한 새로운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영남 대통령’을 앞세운 전략으로 성공을 이끌었던 만큼 보수 진영도 외연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진보 진영은 지난 대선에서 영남 출신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을 내세우며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탈진영 전략 하에 ‘호남’을 강조한 행보를 이어왔다. 영남 틀을 깨고 중도층과 호남 지지층을 잡아 국민의힘을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김 위원장은 보수 정당 최초로 국립 5·18 민주묘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념하고, 수해 복구를 위해 당 지도부와 호남을 방문하는 등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주목 받았다. 

또 김 위원장 직속으로 국민통합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전북 전주 출신 정운천 의원을 내정해 본격 ‘호남 끌어안기’에 나섰다. 국민통합특위는 ▲호남 명예의원 제도 도입 ▲비례대표 공천 시 일정비율 호남 출신 배정 등 ‘호남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집권 여당으로 기울어진 선거 구도를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호남 대통령’ 전략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선거구도에서 민주당이 ‘영남 대통령’ 카드를 사용해 영·호남 민심을 모두 잡아 유리한 선거 구도를 선점하고 있는 만큼 현재의 틀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野, ‘호남’ 카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비교적 호남 친화 인사이자 중도 표심을 잡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등이 여권의 대항마로 꼽힌다. 호남 민심의 지지를 받는 기대주들이 물밑에서 나와 본격적인 대권 주자로 움직일 때 호남 표심이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대표적인 ‘개혁보수파’로 중도층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원 지사는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관록의 정치인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핫라인’으로 불리는 문대림 후보를 10%p 차로 앞서며 제주도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원 지사는 당 내 경선에 참가해 대권 도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다만 호남과 직접적인 연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원 지사의 약점으로 꼽힌다. 한 야권 관계자는 “국회의원 당시 지역구가 양천구였고 현재는 제주도에서 활동을 하고 있어 호남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며 “이후 행보를 주목해야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여권에 대적해 이미 호남 표심을 싹쓸이 한 경험이 있다. 20대 총선에서 안 대표가 김한길·문병호·유성엽 의원 등과 함께 창당한 국민의당은 호남에 ‘녹색바람’, ‘안풍(안철수 바람)’을 일으키며 당시 호남 28석 중 25석을 차지했다. 안 대표는 오는 23일 국민의힘 ‘미래혁신포럼’ 강연자로 나선다. 이에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진영과의 합당을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장 이사장은 범야권의 대표적인 ‘호남 인재’다. 그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고, 김 전 대통령의 ‘적자’로 불린다. 최근에는 보수 색채가 짙은 발언을 이어온, 호남과 영남을 아우를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국민대통합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야권 내 최대 모임인 ‘더 좋은 세상으로’(일명 마포 포럼)의 강연자로 나서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장 이사장은 당시 한반도 북핵 전문가이자 미래 전략가로서의 역량을 펼치며 정권 교체를 위한 야권의 전략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전·현직 의원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보수 개혁의 키를 잡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호남’과 깊은 연관이 있다. 김 위원장은 광주 서석 초등학교와 광주서중을 졸업했고 그의 조부모 고향도 전북 순창이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일 재산 신고 누락 의혹이 제기된 김홍걸 의원을 제명했다. 전날 본격 가동된 당 윤리감찰단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징계다. 이낙연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나온 이례적인 결정으로, 김 의원의 제명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여야 간 호남 쟁탈전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호남’을 대표하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제명 사건이 민주당의 호남 지지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남 꼰대당’ 극복을 위한 묘수로 야권의 ‘서진 정책’이 꼽히고 있는 만큼 정치권의 ‘호남 대전’이 주목된다.

hyeonzi@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