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달의 기억

이정화 (주부/작가)

입력 2020-09-28 13: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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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달의 기억
▲ 이정화 작가
어린 시절, 나는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다. 오빠와 내가 함께 가지를 타고 올라가 한참을 놀만큼 큰 단풍나무가 있던 연못 옆으론 달빛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던 커다란 정원석이 있었다. 달 밝은 밤이면 엄마 아버지는 그곳에 앉아 밤바람을 쏘이셨고, 나는 달빛 사이로 담벼락부근에 빙 둘러 만든 꽃밭을 돌아다니며 밤에 피는 꽃을 찾았다. 낮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어느새 활짝 얼굴을 쳐든 분꽃에 홀려 꽃밭을 밟고 다니면 엄마는 나를 붙잡아 앉히셨고, 나는 엄마에게 기대어 달을 올려다보았다. 떡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달에 사는 옥토끼가 절구를 찧는 얘기를 해주시면 나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이야기를 졸랐다. 꼬리에 꼬리를 문 옛날이야기가 해님 달님 오누이 얘기와 강물을 타고 내려온 복숭아 아기로 이어질 때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져 결국 엄마는 그 늦은 밤에 솔잎을 부친 채 굳어있던 송편을 다시 쪄주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선 전 학년이 수업을 멈추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텔레비전에선 미국인 암스트롱의 달 착륙 장면을 중계하고 있었다. 우주인의 세계 최초 달 착륙이라니 세상은 하루아침에 우주 시대가 다가올 듯 웅성거렸지만 나는 뭔가 좀 당황했다. 겨우 열 살짜리가 뭘 구체적으로 느꼈을까 싶지만, 지구와 다른 중력으로 암스트롱이 텅 빈 달에서 토끼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히 설렘은 아니었다. 차라리 암스트롱이 맞은편에서 깡충깡충 뛰어온 옥토끼와 악수를 하고 토끼가 지구손님을 위해 열심히 떡방아를 찧어 빚은 송편을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이 방송되었다면 나는 더 열렬히 환호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곳에 토끼나 절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뭔가 속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나는 엄마 아버지 옆에서 별도 세고 달도 보았겠지만 옥토끼를 더이상 찾지 않았다. 빈방처럼 공허한 달을 향해 소원을 비는 일도 없었다. 어느덧 내게 달은 내가 알던 그 전의 달과 달라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빛을 잃으니 그림자도 없었다. 결국 그날 이후 인류는 달의 비밀에 성큼 다가섰지만 나는 달로부터 뚝 떨어져 버렸다. 1969년 7월 20일, 그때부터였다.  

[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달의 기억
▲ '달의 기억'. 그림=이정화.

엊그젠 친정어머니께 이른 추석 인사를 드리러 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정신이 흐려지니 친정 나들이도 예전 같이 신나지 않고 명절의 감흥도 없다. 추석이고 설이고, 내게는 시댁 차례가 먼저니 명절 전후 들리는 친정에선 귀도 어두운 엄마와 겨우 몇 마디 나누고 아버지 영정에 인사를 하고 나면 엄마와는 더 할 게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친정 나들이가 그야말로 빛을 잃어, 추석은커녕 지금이 가을인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내 편리대로 앞당겨온 이것이 정말 엄마를 위한 일인지, 사실은 엄마 곁을 지켜주는 오빠와 올케언니에 대한 옹색한 과시인지, 먼 훗날 내 위안을 삼으려는 가벼운 짓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이번에도 마른 화분처럼 엄마를 한 편에 앉혀놓고 언니 오빠하고만 떠들어댔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나만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뒤늦게 엄마를 보고 웃어드렸더니 내 얼굴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엄마도 활짝 웃으셨다. 나는 엄마의 기억이 흐려진 뒤부터 우리 엄마가 내게서 점점 멀리 떠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차피 엄마는 무얼 잘 듣지도 알지도 못한다며 엄마에게서 훌쩍 떨어져 온 것은 어쩌면 내가 먼저였던 건 아닐까,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엄마에 대한 죄송함과 아련함, 뒤늦은 후회로 돌아오는 길엔 하늘에 떠있는 달이 보였다. 달을 보며 그 옛날, 마당에서 엄마와 아버지께 기대어 달을 바라보던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옥토끼가 절구를 찧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쩌면 이젠 달에 아버지가 살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달그림자를 그려보았다. 언젠가 어느 전시회장 모퉁이에 쓰여 있던 글이 생각났다. ‘사랑한다 생각했는데 사랑받고 있었다’란 것이었다. 내가 그랬다. 엄마가 나에게,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다. 내가 바라보지 않을 때도 언제나 그 자리에 떠올라 나를 바라보았을 달처럼 그랬다. 흐린 기억과 청력 속에도 나만 바라보시던 엄마와, 눈 앞엔 안 계셔도 나를 지켜보고 계실 아버지, 덜할 수도 더할 수도 없는 달의 기억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