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웃길 수 있어 행복하다”던 ‘멋쟁이 희극인’

기사승인 2020-11-03 06: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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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웃길 수 있어 행복하다”던 ‘멋쟁이 희극인’
▲ 개그맨 박지선 / 사진=쿠키뉴스DB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그는 여러 직업으로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개그맨이었고, MC였으며, 라디오 DJ이기도 했습니다. 때론 강연도 했고, 노래도 잘 불렀습니다.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습니다. TV에 나오거나 무대에 오른 그를 보면 언제나 즐거워졌습니다.

그는 1984년 11월3일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제법 잘해 고려대학교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선생님이 될 뻔한 그의 인생은 서울 노량진의 어느 학원에서 180° 바뀌었습니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며, 그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내가 언제 행복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친구들을 모아놓고 웃기던 때가 생각나더랍니다. 그는 학원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2006년 공연계에서 연기 생활을 잠시 하다가 이듬해 3월 KBS 22기 공채 개그맨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희극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지 않고도 웃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보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유쾌했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삼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외모가 개그맨 사회에선 무기가 되더라고, 그래서 자신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긴 얼굴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잖아요.”(제10회 대한민국영상대전) 그의 이야기는 외모지상주의에 숨막혀하던 사람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어줬고,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줬습니다.

그는 ‘말하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표현 방법이 기발해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가진 능력에 비해 방송 출연이 잦지 않아 늘 아쉬웠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의 철학과 소신에 따라 마음이 가는 프로그램을 직접 선택해 출연해왔다고 합니다. 최근 몇 년 간은 취재 현장에서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로 영화·드라마의 제작발표회나 가수들의 팬미팅, 컴백 공연에서 사회를 맡곤 했습니다. 그는 단 몇 시간의 행사를 위해 몇 날 며칠간 해당 연예인과 작품을 공부하고 분석했다고 합니다. ‘알고 반응하는 것과 모르고 반응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하다던, 어떤 선택을 하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던 그가 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개그맨 송은이가 말했던 대로, 그의 시대가 곧 올 거라고 기대해왔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큽니다. 그가 줬던 사려 깊은 웃음으로, 그가 생전 SNS에서 썼던 별명이기도 한 ‘멋쟁이 희극인’으로 그를 기억하겠습니다. 故 박지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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