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있는 영부인’이 낯선 이유는

한성주 / 기사승인 : 2020-11-12 10:44:01
- + 인쇄

질 바이든 여사가 근무하는 교실을 배경으로 조 바이든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영상을 촬영했다./연합뉴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미국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된 조 바이든 후보. 그가 취임하면 아내 질 바이든 여사는 최초로 ‘직업 있는 영부인’이 된다. 뉴욕타임즈는 8일(현지시간) 질 바이든 여사 측 대변인 마이클 라로사가 성명을 통해 질 바이든 여사가 남편이 취임한 후에도 교직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질 바이든 여사는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작문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해는 남편의 선거유세를 지원하기 위해 휴직했다.

대통령의 아내 영부인은 직업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영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에게는 업무가 주어지고 임금이 지급되지만, 영부인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없다. 영부인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회활동을 하며 상징적인 존재로 활약한다.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통령이나 총리의 관저에 영부인을 위한 비서관과 영부인실을 둔다.

역대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45명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제임스 뷰캐넌 15대 대통령을 제외하면, 이들의 배우자는 모두 ‘전업’ 영부인이었다. 뷰캐넌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 영부인의 역할을 대신 했던 조카딸 헤리엇 레인도 특별한 직업은 없었다. 

21세기에도 백악관에서 일터로 출근한 영부인은 없었다. 버락오바마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 여사는 변호사와 공직자로 활동했지만, 2008년부터 일을 그만두고 남편의 정치활동을 지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는 16세부터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백악관 입성 후 직업생활은 물론, 대외활동도 활발하지 않아 ‘은둔형 영부인’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의 역대 영부인들의 행적도 이와 유사하다. 역대 대통령 12명 가운데 결혼을 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11명은 모두 기혼 남성이다. 이들의 배우자 11명은 모두 영부인으로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폈다. 매일 근무지로 출근을 하거나, 특정 업무를 수행하며 임금 노동을 했던 영부인은 없다.

영부인들은 취약계층을 돌보는 사회활동을 펼쳤다. 윤보선 4대 대통령의 영부인 공덕귀 여사는 윤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사회운동가로서 기생관광 반대 운동, 원폭 피해자 지원 운동 등을 전개했다. 김대중 15대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는 역대 영부인 가운데 가장 활발히 활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김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대외활동 외에도 여성인권 증진과 소외계층 복지를 위한 사회활동을 지속했다.

결혼을 하면서 학업을 중단했거나, 전공을 직업으로 잇지 못한 사례도 있다. 전두환의 아내 이순자 여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었지만, 결혼식을 올리면서 학교를 중퇴했다. 김영삼 14대 대통령의 영부인 손명순 여사는 결혼 사실을 숨기고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 약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러나 약국을 열거나, 약사로 활동한 이력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는 영부인이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김은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여성들의 임금노동이 보편화된 지 오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김 박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이 직업생활을 하며 돈을 벌거나, 전문직에 진출한 것이 최근의 일”이라며 “남편이 당선된 이후 직장을 그만 두었다기보다는, 당초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영부인을 직업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단순히 남편을 내조하는 위치로 볼 수도 없다”며 “대통령을 돕는 것은 물론, 사회복지 분야에서 상당한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여성 지도자인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남편들도 아내의 조력자로 활약했다”고 덧붙였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