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신사 볼모로 잡은 세금잔치

기사승인 2020-11-21 05: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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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통신사 볼모로 잡은 세금잔치


“왜 재할당 대가를 받느냐고요? 당연히 쓰려고 받는 돈입니다.” 주파수 재할당 관련 연구반에 참여했던 송시강 홍익대 교수의 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통신3사에 주파수를 재할당하면서 그 대가를 받는 이유로 세수 확보를 지적한 것이다. 통신사가 정부에 내는 이 세금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뉴딜'의 주된 재원으로 쓰일 예정이다. 정부는 공공 자산인 주파수를 민간에 할당하면서 그에 맞는 경제적 대가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재할당 대상 주파수는 통신3사가 쓰고 있는 이동통신 주파수 390MHz 폭 중 310MHz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2G주파수 20MHz, 3G주파수 20MHz폭, LTE주파수 270MHz가 해당된다. 현재 통신3사가 5G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 4G LTE 주파수와 연계하여 실현되는 비단독모드인 것을 감안할 때, 4G 주파수 대역은 통신사에게 꼭 필요하다. 5G 데이터 중 일부를 4G 기지국에 분배하고, 5G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4G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하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역이다.  

문제는 이 필수 주파수에 정부가 산정한 재할당 대가의 규모다. 과기정통부는 이 주파수를 사용기한 5년 기준으로 2010년과 2013년 주파수 경매 당시 가치를 그대로 적용하되 5G 도입에 따른 가치하락을 감안해 27% 깎아주어 4억4000만원으로 산정했다. 경매대가의 50% 수준의 가치 적용이 타당하다는 통신3사의 의견은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정부는 5G 구축 수준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5G 구축 옵션’을 제시했다. 15만국 이상 구축 시 3조2000억원, 12만~15만국 사이는 3조4000억원, 9만~12만국은 3조7000억원, 6만~9만국은 3조9000억원 수준이다. 통신사들이 자체 산정한 예상대가가 1조5000억원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정부가 제시한 최소 3조2000억원의 대가는 2~3배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5G 기지국 옵션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사가 지난 8년간 12만국을 깔았는데, 재할당 시기인 2022년까지 2년간 15만국 이상을 깔라는 요구라는 것이다.

통신사들은 2년 내 최대한 해봤자 10만국 수준이라며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사실상 이것이 ‘벌금’이라고 봤다. 정부의 설명회에 참석한 SK텔레콤 임원은 “여기 나와 있는 이통3사 임원이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사인볼트보다 빨리 달리게 하고 달성하지 못할 시 0.5초마다 수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유했고, 청중으로 가득찬 설명회장에서는 공감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정부가 재할당 대가만 요구한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부는 통신비 인하 압박도 함께 주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은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통신3사 임원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인 ‘통신비 인하’를 강하게 주장했다. KT가 이를 의식해 국감을 앞두고 월 4만원대, 월 6만원대의 5G 요금제를 내놓았으며, 통신3사도 통신비 인하에 대해 공식적으로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통신사들은 빠르면 연내 5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가격을 낮추거나 4만원대의 저가 요금제 용량을 낮추는 방식으로 요금인하를 할 예정이다. 정부가 사실상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을 깎아서 정부에도 헌납하고, 통신사의 ‘밥줄’인 통신비도 인하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상황이 심화되는 데 따른 정부의 요청으로 통신사는 상반기에 상당한 규모의 선 투자집행도 해놓은 상태다.

세금을 많이 뜯어가는 것만이 좋을까? 그 세금은 누가 내나? 사실상 통신사는 고객(국민)에게서 통신비를 받아 정부에 내는 것이다. 정부안이 이대로 확정된다면 통신3사로서는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재정악화로 인해 ‘돈 먹는 하마’인 5G망 구축이 생각보다 더 더뎌지고, 일부 2G나 3G 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여기에 늘어나는 부담을 통신비나 추가적인 비용부담으로 고객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

통신비용 증가나 통신 질 저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정부는 적정한 선을 잘 조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앞으로 모호한 법조항으로 인한 의견대립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파수 대가 산정 기준을 전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정책 일관성과 예측가능성, 그리고 비용의 감당 가능성을 고려해 주파수 재할당 대가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길 바란다.

kuh@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