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배터리 시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K-배터리 시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20-11-25 06: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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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배터리 시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최근 전기차 시장이 글로벌 화두다. 전기차 1위 업체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이미 폭스바겐, 도요타를 뛰어넘었다. 유럽은 포스트 코로나 정책으로 전기차 보급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힘입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1위 업체 LG화학의 주가는 올해 초 대비 2.5배가량 상승했다.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 경쟁도 치열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LG화학이 24.6%로 1위, 중국 CATL이 23.7%로 2위, 일본 파나소닉이 19.5%로 3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중일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이 호각세인 만큼 중국·일본 업체를 따돌리기 위해선 배터리 동맹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정부가 최근 몇 년간 국내 완성차 1위인 현대차와 LG화학, 삼성SDI 등에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을 요청 해왔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전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접근 방식 자체가 틀렸다는 지적이 많다. 배터리 업체 간 동맹은 현실성이 없고, 글로벌 시장에서 담합행위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학계와 법조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동맹에 힘을 낭비하기보다는 전기차 시장 확대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산업을 육성 중인 글로벌 정부의 행보를 바라보면 우리 정부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먼저 전기 승용차 보조금의 전폭적인 확대가 요구된다.

최근 유럽은 포스트 코로나 정책으로 지속가능성장을 강조하며 전기차의 보조금을 대폭 확대했다. 세계 최대의 완성차업체들을 보유한 독일은 순수 전기차 보조금을 기존 최대 6000유로에서 9000유로(약 1250만원)로 대폭 확대했다. 또 순수 전기차 보유세 면제 기간을 기존 2025년에서 2030년으로 연장했다.

프랑스도 순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기존 6000유로에서 7000유로(약 1000만원)로 확대했고, 폐차 인센티브 5000유로(약 700만원)까지 도입해 최대 1700만원의 보조금 수령이 가능하다.

한국은 전기 화물차와 승합차 등 상용차 부분에 대한 보조금은 상당 부분 확대해왔지만, 전기 승용차 보조금은 최근 몇 년간 대폭 줄여왔다.

메이저 완성차 업체를 다수 보유한 독일과 프랑스가 전기차 보조금 확대로 완성차 업체에 힘을 실어주는 만큼 국내도 보조금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둘째로는 중국 전기차 보조금 문제의 해결이 절실하다.

중국 정부는 2016년 말부터 중국 업체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주로 보조금을 주고 있다. 그 이후 LG화학, 삼성SDI 등은 중국 완성차 업체와의 장기 계약이 파기되면서 수십조 원의 피해를 입었다.

최근에는 국내 배터리 3사의 배터리를 탑재한 일부 차량이 보조금 명단에 포함되는 등 상황이 개선됐으나 테슬라 전기차를 제외하면 이는 중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극히 일부 물량이다.

당초 중국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올해 말 소멸될 예정이었으나, 중국 정부는 갑자기 2년 연장을 발표했다. 이처럼 중국은 자국 배터리 업체 보호를 위해서는 언제라도 보호 장벽을 강화하는 나라다.

반면 우리 정부는 2018년 전기버스 보조금 중 40% 이상을 수입 중국 버스에 제공하는 촌극을 보여줬다.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에서 한국산 배터리를 완전히 배제해왔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버스에 보조금을 퍼다 준 셈이다. 양국 간 전기차 보조금 이슈에서 한국 정부가 사실상 중국 정부에 농락당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중국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1회 충전 시 5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한 3세대 전기차가 본격 출시되는 2021년을 진정한 전기차 배터리 경쟁의 승부처로 보고 있다.

다가올 대경쟁에서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해줘야만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선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 강화가 시급하다.

현재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은 세계 최고다. 그러나 최근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기술력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 업체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강력한 장치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다. 디스커버리 제도란 미국 민사소송에 적용되는 증거조사 절차다. 소송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획득하고, 보전하기 위해 서로 각종 정보와 문서 등을 교환하는 절차를 일컫는다.

해외에서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일본 등이 디스커버리 제도와 같은 강력한 증거확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이 제도가 없어 기업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입어도 피해 입증에 어려움이 따른다. 해외 경쟁사들이 디스커버리 제도 등이 한국에 없다는 점을 악용한다면 3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K-배터리 기술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국이 중국 등에 ‘기술 도둑질’을 당한 사례는 완성차와 조선업,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하나하나 꼽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많다.

중국은 지금도 호시탐탐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국내 배터리 업체의 인력과 기술력을 탐내고 있다. 국내에도 하루빨리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 배터리 업체들이 필요시 이를 활용해 귀중한 지적재산권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만 한다.

현 대통령은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면 배터리는 ‘미래 산업의 쌀’이라며 극찬해왔다. 산업부 역시 전기차 배터리를 5대 신 수출 성장동력 품목으로 선정하며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의 극찬과 야심찬 계획과 달리 현장에서 마주하는 업계의 목소리는 신통치 않다는 평가가 대부분인 게 사실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이제껏 알아서 잘해왔다. 또 3곳의 걸출한 배터리 업체를 보유한 만큼 서로 경쟁하며 실력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미 세계 최고란 의미다.

정부는 이미 잘하고 있는 배터리 업체 간의 협력보다는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을 도와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im9181@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