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조제’ 아름다운 잔상에 느낌표, 흐릿한 인상에 물음표

기사승인 2020-12-03 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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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리뷰] ‘조제’ 아름다운 잔상에 느낌표, 흐릿한 인상에 물음표
▲ 영화 '조제'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흐릿하고 모호하다. 영화 ‘조제’(감독 김종관)은 2004년 국내 개봉한 원작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왔다. 원작의 날카로운 부분을 문지르고 일부 맥락을 덜어내자 두 인물의 멜로만 남았다. 시대와 국적을 넘어 다시 이 이야기를 하려하는 이유보다는 어딘가 흐릿한 영상 이미지만 잔상처럼 남는다.

‘조제’는 할머니의 집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는 조제(한지민)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대학생 영석(남주혁)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자신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인 ‘조제’라고 불러달라는 조제에게 영석은 묘한 끌림을 느낀다. 어색하게 혼자 얻어먹기 시작한 식사 자리는 어느새 함께 하는 가족 식사가 되고, 나중엔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렇게 조제의 집을 드나들며 도움을 주던 영석은 그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갖게 되지만, 그 후 조제는 더 이상 문을 열지 않는다.

조제는 자신이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고 케냐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알 수 없는 과거 이야기를 순서 없이 꺼낸다. 책에서 읽은 허구의 세계를 실제 자신의 세계인 것처럼 생각하고 그걸 들려준다. 바깥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매일 마주하는 영석이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영석은 조제의 허구의 세계에, 조제는 영석의 현실 세계에 조금씩 스며든다.

[쿡리뷰] ‘조제’ 아름다운 잔상에 느낌표, 흐릿한 인상에 물음표
▲ 영화 '조제' 스틸컷

두 사람의 만남부터 작은 설정과 이야기의 순서 등 영화의 초중반까진 원작에서 가져온 요소들로 채워진다. 같은 설정이지만 시대와 국가적 상황이 다른점을 보완하는 장면들이 추가됐다. 조제와 영석의 감정 변화는 원작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대사와 상황으로 서사를 설명하는 것보다 분위기와 미묘한 눈빛의 떨림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표현 방식은 더 모호해진다. 인물이 겪고 느끼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까지 나아간다.

원작은 낯설고 독특한 연애를 평범하고 보편적인 연애로 만들었다.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연애 당사자만의 감정을 선악 구분 없이 솔직하게 그렸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던 인물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어질 수 있는지 섬세하게 설명하고 그 이후의 과정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서술했다. ‘조제’는 디테일한 서사보다는 순간의 느낌에 충실한다. 이들이 만남에 이르게 된 개연성을 하나씩 설명하는 것보다 우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그린다. 말보다 행동과 표정, 분위기 등으로 설득한다. 단,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읽어내지 못하면 그저 예쁜 영상 화보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 감정을 대사에 싣지 않는 배우 한지민의 연기도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오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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